5일간의 '울림'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에 머문 시간은 5일.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가 전한 메시지는 깊었고 울림은 컸다. 우리 스스로 잊었거나 외면했던 우리 안의 약자들을 찾아 보듬는 모습에 감사하면서도 반성을 해야 했고, '평화'를 "정의의 결과"라고 못박은 것은 새로운 가르침이었다. 세대·지역·계층 간 갈등으로 몸살을 앓은 지 오래인 우리에게 교황의 소통 방식 또한 보고 배울 바였다.
◆"기억하겠다"
지난 14일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서 세월호 유족들이 교황을 영접했다. 교황은 "가슴이 아프다.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있다"며 유족을 위로했다. 유족들을 향한 교황의 관심과 위로는 한국을 떠나던 18일의 자필 편지를 보낸 것까지 5일 내내 이어졌다. 교황이 "기억하겠다."고 한 대상은 유족만이 아니었다. 장애인, 위안부 할머니, 새터민, 쌍용차 해고자, 제주 강정마을 주민, 밀양 송전탑 건설 예정지역 주민, 용산 참사 희생자 등 우리 사회의 약자 모두였다. 그는 이들을 각종 행사에 초대해 관심을 보였다.
교황방한위원장을 맡았던 강우일 주교는 "교황님은 하소연하고 싶은 사람의 하소연을 들어주시고, 장애 때문에 세상에서 버림받고 부모에게서도 버림받은 장애아들과 볼을 비비며 당신의 사랑과 연민을 나누어 주셨다"고 말했다. 서강대 오세일 교수는 교황의 이런 행보를 "가톨릭교회의 정신이 반영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가톨릭은 사회에서 잊혀 지기 쉬운 사회적 약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의 인격적 존엄성을 보호하려 한다."며 "존엄성을 위협하는 성장 위주의 경제모델을 비판한 것도 이런 의미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밝혔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무관심, 냉대가 팽배한 한국 사회가 자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고려대 이필상 전 총장은 "세월호 참사만 해도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지도층이 제대로 된 대응을 하길 바랐으나 기대에 못 미쳤다"며 "이런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했던 부분들은 반성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평화는 정의의 결과…용서와 관용이 필요"
교황은 방한 첫날 청와대 연설에서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게 아니라 정의의 결과다. 정의는 용서와 관용, 협력을 요구한다."고 역설했다. 서울 명동성당에서 가진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서는 "죄 지은 형제들을 아무런 조건없이 용서하라"고 강조했다. 평화와 용서를 통한 화해는 방한 기간 중 교황의 일관된 가치였다. 명지대 신율 교수는 "남북이 분단되어 있고, 내부의 대립도 너무 얽히고설켜 서로를 증오하는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여서 더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며 "굉장히 추상적인 말이라 남들이 하면 무슨 소리냐 하겠지만, 정신적 권위를 가진 교황의 말이었기 때문에 상당한 의미를 가졌다"고 평가했다.
한국이 세계 유일의 분단국인지라 평화의 메시지는 더 절실한 가치로 다가왔다. 교황은 분단된 현실을 걱정하는 한 청년에게 "한 가족이 둘로 나뉜 건 큰 고통이다. 하지만 한국은 하나라는 아름다운 희망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희망은 같은 언어를 쓰는 한 형제라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마음을 열지 않는 대화는 독백일 뿐"
국민들이 교황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행동에 주목하며 열광한 것은 그의 소통 방식에서 비롯된 바가 컸다. 교황은 최고의 종교 지도자란 권위에 얽매이지 않았고,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대화를 나눴다. 세월호 유족들의 손을 잡아주고, 장애인 하나하나를 어루만지는 모습 등에서 소통은 언어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만나고 이해하는 것임을 보여줬다. 오세일 교수는 "우리는 권위적 문화 안에서 일방적인 지식의 전달을 소통이라 여긴 경향이 있었고, 정치권과 각계 지도자들이 말로만 소통을 외쳐 왔다"며 "교황님은 사람의 마음이 만나고, 인격적 교감이 일어날 때 진정한 소통이 이뤄진다는 점을 보여줬다"고 밝혔다.
세계일보 강구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