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를 사랑한 사람
서초구 반포동에서 조그만 보석상을 경영하던 박상철 씨는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3명의 강도가 보석상에 침입하여 3억여 원 상당의 금은보석을 챙겨 달아나자 뒤쫓아 나가 범인의 승용차를 가로막았다. 자동차에 매달린 채 50m를 끌려가다 급제동을 건 차에서 튕겨져 나와 길가의 보도 불럭에 머리를 부딪쳐 뇌를 다치고 말았다. 식물인간 상태로 한 달 가까이 사경을 헤매다 가까스로 의식을 되찾은 뒤에도 반신불수와 언어장애를 이겨내야 하는 고통의 연속이었다.
범인들은 그로부터 10개월 뒤에 또 다른 금은방을 털다가 검거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박상철 씨는 분노로 몸을 떨었다. 범인은 박상철 씨의 모든 것을 빼앗아갔다. 사고 전 그는 일본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금은방을 송두리째 강탈당한 뒤에는 가장의 병치레로 집안은 완전히 기울고만 것이다.
박씨가 경찰에 출두해 범인과 처음 마주쳤을 때, 그는 분노와 절망이 한꺼번에 밀어 닥쳐 몸둘바를 몰랐다. 그러나 자신의 사건과 관련해 범죄 주도자가 검찰에서 살인미수죄가 추가돼 사형이 구형되면서 천주교 신자인 그는 심적 갈등에 휩싸였다. 가정불화로 16살에 집을 나와 범죄의 늪에 빠진 범인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형제가 죄를 지은 뒤 회개하면, 일곱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는 주님 말씀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미움과 분노를 털어내고 범인을 면회했다. 곧이어 범인을 감형해 줄 것을 요청하는 탄원서를 법원에 냈다.
그 후 법원에서는 범인에게 무기형을 선고했고 박상철 씨는 계속 교도소를 찾았다. 범인은 박상철 씨의 마음에 감화를 받아 속죄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으며 신앙에 귀의했다. 범인이 영세를 받을 때는 박상철 씨가 대부를 자청하기까지 했다. 온갖 죄를 저질렀던 범인은 진심으로 회개하는 마음으로 지금은 교도소에서 목공기술을 배우는 등 모범적인 복역생활을 하고 있다.
<월간 좋은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