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고
노벨 문학상에 빛나는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는 2014년 집필을 시작하여 2021년 문학동네에서 출판했다. 제주 4·3으로 가족을 잃었던 기억과 작별하지 않으려는 유족의 아프고 슬픈 사랑이 담겨 있다.
소설은 작가인 경하의 꿈 이야기로 시작한다. 눈 내리는 벌판에 검은 통나무가 마치 묘비처럼 줄지어 있다. 저것이 무엇일까 잠깐 생각하는 사이 발 아래로 물이 차오르는 것을 보고 들판이 아니라 바다임을 알게 된다. 그는 무덤들이 모두 바다에 쓸려가기 전에 뼈들을 옮겨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어쩌지 못하는 채로 꿈에서 깨어난다. 사진 작가이자 다큐멘터리 영화 작업을 하다가 치매로 고생하는 엄마의 간병을 위해 제주도로 내려가 목공일을 하고 있는 친구 인선과 함께 그 꿈과 연관된 작업을 영상으로 만들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경하는 글을 쓰느라 바쁘고, 인선도 머나먼 제주에서 머무르기 때문에 일 년에 겨우 한 두 번 소식을 전할 뿐이다.
그러던 중 인선이 서울에 있는 병원에 입원을 했는데 와줄 수 있냐는 부탁을 받고 경하는 황급히 병원으로 향한다. 인선은 생계를 위해 하던 목공 작업 중 손가락 2개가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고, 손가락 접합을 위해 매 3분 단위로 주삿바늘로 상처 부위를 찌르는 치료를 받게 되어 꼼짝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으니 애완용으로 기르던 앵무새 한테 물과 모이를 주기 위해 제주도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가줄 것을 부탁한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하는 인선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던 경하는 폭설과 강풍의 거친 날씨에 제주도로 향한다. 공항에 도착하여 오랜 시간을 기다린 뒤 버스를 2번 갈아 타고 정류장에서 간신히 내린다. 그런데 그곳에서도 친구의 집까지는 산길을 한참 걸어가야 된다. 걸어가던 중 폭설과 어둠에 갇히며 길을 잃고 넝쿨에 상처도 입는 등 동상으로 얼어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기고 가까스로 인선 집에 도착한다. 이미 앵무새는 죽어 있고, 집안은 냉기로 가득한데 먹을 음식도 없다.
다음 날 일어나서 차를 한 잔 마시고 집안 이곳 저곳을 둘러보니 칠십 년 전 제주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과 얽힌 인선 엄마의 참담하고 끔찍했던 제주 4.3 사건을 마주하게 된다. 인선의 어머니가 13살 때, 외가에 잠깐 다녀오는 사이에 마을이 불타 쑥대밭이 되어버렸다. 학교 운동장에는 마을 사람들의 시신이 즐비한데, 시신 위로 눈이 내렸다. 엄마는 시신의 얼굴에 쌓인 눈을 한 사람씩 닦아가다 마침내 외할아버와 외할머니를 찾았는데, 옆에 있어야 할 외삼촌과 막내 이모가 안 보였다. 어머니는 초조해져서, 보리밭과 불탄 집터의 시신들을 헤집고 다니다가 마침내 총에 맞고 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이모를 찾아낸다. 8살짜리 막내 이모는 여기 저기 총알 흔적으로 피투성이가 되어 앓는 소리조차 내지못하고 숨만 쉬고 있는데, 손가락을 깨물어 앞니가 빠진 자리에 손가락을 넣고 피를 먹여 주니 빨았다고 한다.
그 후 인선 엄마는 외삼촌의 행방을 쫓아 다니며 누구보다 열렬하게 4.3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일에 앞장 섰을 뿐만 아니라, 모든 학살 관련 자료들을 수집하고 보관하는데 철저했다. 제주에서만 살았던, 가녀린 분이 목포, 진주, 부산, 대구까지 돌아다니며 각종 신문, 잡지, 영상을 수집했다. 3,000명이 넘는 유해가 묻혀 있었던 대구 근처의 경산 코발트 광산 위령제 유인물까지도. 나중에 치매 증상으로 대부분의 기억을 잃었지만, 잠들어 있는 딸 인선에게 손가락을 물리고서 아이처럼 울곤 했다.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엄마 탓에 잠을 제대로 못 잤는데, 엄마가 돌아가시자 오히려 그 트라우마가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되살아났다. 4.3의 상처와 작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작별할래야 도무지 작별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경하가 숙제처럼 생각한 일은 바닷가에서 사살된 수많은 사람들이 파도에 쓸려간 무덤없는 무덤을 기리는 영상 작업이다. 아무리 구해달라고 소리쳐도 아무도 구하러 오지 않는 절망 속에 죽어갔던 유령들을 달래는 의식이다. 영상 작업이 힘에 부치는 일이긴 하나, 유족으로 활동한 인선 어머니가 기울인 일생의 노력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처음 영상작업을 제안한 경하보다 오히려 인선이 더 적극적으로 작업 준비를 하고 기다린 것도 이 때문이다. 무참하게 죽어 뼈와 뼈가 뒤섞인 채 묻혀 있는 아이들을 생각하며 인선은 이미 영상작업을 작정하고 많은 준비를 해두었다.
그 작업을 위해 인선이 서울에서 내려와 정해둔 터를 찾아 반토막의 촛불을 켠 채 눈을 맞으며 어두운 밤길을 같이 걸어가는 것이 이 작품의 결말이다. 눈은 계속 쏟아지는데 촛불 하나에 의지하여 알 수 없는 숲길을 지나 목적지에 이르자, 돌아갈 촛불마저 꺼졌다. 다시 불을 붙일 수는 있을까? 걱정하고 있는데 주변이 고요하다. 아무런 인기척도 없다. 제주에서 인선과 나눈 대화는 현실이 아니라 환상이었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악몽에서 시작하여 환상으로 끝나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서두와 결말은 하나의 형식일 뿐 그 속에 담겨져 있는 4.3의 진실은 생생한 역사이다. 인선의 어머니처럼 치매로 모든 기억들을 다 잊어버려도 그날의 참상을 잊지 못하는 트라우마처럼, 독자들도 읽기가 힘들지만 읽고 나서도 힘들다. 고통스럽게 읽지 않고는 처참한 고통의 역사를 제대로 포착할 수 없다. 고통의 상흔이 잔상으로 남아있지 않는다면 작품을 온전하게 읽었다고 할 수 없다. 쓰라린 아픔이 <작별하지 않는다>를 작별할 수 없게 만든다. 고통의 역사도 후손들에겐 좋은 가르침이 되기 때문이다.
<도올 김용옥, 제주4.3을 말하다 2부>
https://www.youtube.com/watch?v=i_YIedf0x4o&pp=ygUX7KCc7KO8IDQzIOuPhOyYrCDtirnqsJU%3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