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답사일시:2009년 7월 11일
0 입장료:3,000원
임금과 신하들이 정사를 돌보던 외전과 왕과 왕비의 생활공간인 내전, 그리고 휴식공간인 후원으로 나누어진다. 내전의 뒤쪽으로 펼쳐지는 후원은 울창한 숲과 연못, 크고 작은 정자들이 마련되어 자연경관을 살린 점이 뛰어나다. 또한 우리나라 옛 선현들이 정원을 조성한 방법 등을 잘 보여주고 있어 역사적으로나 건축사적으로 귀충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160여 종의 나무들이 울창하게 숲을 이루며 300년이 넘는 오래된 나무들도 있다.
정궁인 경복궁이 질서정연한 대칭구도를 보이는데 비해 창덕궁은 지형조건에 맞추어 자유로운 구성을 보여주는 특징이 있다. 창덕궁과 후원은 자연의 순리를 존중하여 자연과의 조화를 기본으로 하는 한국문화의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는 장소로,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금천교 (錦川橋)-금천교는 1411년(태종11년)에 축조된 돌다리이다. 비단같이 맑은 물이 흐른다 하여 비단 금(錦)에 내 천(川)자를 사용하였다. 현재 서울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돌다리로서 아름다운 난간석과 견고하고 장중한 축조 기술이 돋보인다.
인정전 (仁政殿: 국보 225호 )-인정전은 창덕궁의 정전(政殿)으로 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외국 사신의 접견 등 국가의 중요 행사가 행해진 궁궐의 대표적 공간이다. 이러한 행사 때에는 인정전 앞의 품계석에 맞춰 동쪽에는 문관이, 서쪽에는 무관이 중앙을 향해 도열했다.
품계석
대조전 (보물 816호)-청마루를 가운데 두고 왕비의 침전인 서온돌과 임금의 침전인 동온돌로 나뉘어진다. '大造殿'은 나라의 큰 일을 할 세자가 태어나는 건물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 건물은 용마루가 없는데 이는 용으로 비유되는 임금이 잠자는 곳에 또 다른 용을 나타내는 용마루가 있으면 두 용이 충돌한다 하여 설치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조전 우측
뒤뜰과 후원으로 나가는 문
낙선재(樂善齋)-낙선재는 1847년(헌종 13년)후궁 김씨의 처소로 지어졌다. 이 곳은 마지막 황후인 윤황후(순정효황후)가 1966년까지, 덕혜옹주와 이방자 여사등이 1989년까지 거처하던 곳이다.
주합루(宙合樓)-주합루는 1776년(정조 즉위년)에 지은 2층 누각이다. 아래층은 왕립도서관인 규장각 서고이고 위층은 열람실이다.
초기 왕실도서관으로 출발한 규장각은 점차 정책연구기관으로 기능하여 정조의 개혁 정치와 조선 중기 문예 부흥의 산실 역할을 하였다.
채제공, 정약용, 이가환, 박제가, 유득공,이덕무 등 적서(嫡庶)의 구별 없이 다양한 인재들이 여기서 활동하였다. 주합루라는 편액은 정조의 친필이다. 주합루의 정문인 어수문(魚水門)에는 임금을 물에, 신하들을 물고기에 비유하여 군신의 융화적 관계를 함축한 뜻이 담겨 있다. 어수문은 임금이, 그옆의 작은 문으로는 신하들이 출입했다
부용지(芙蓉池)-조선의 궁궐 연못은 천원지방(天圓地方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 사상에 의해서 조성되었다. 부용지도 땅을 상징하는 네모난 연못 속에 하늘을 상징하는 둥근 섬을 만들었다.
부용정(芙蓉亭)-부용정(1792년 건립)은 十자형을 기본으로 하되, 남쪽으로 양쪽에 한 칸씩 보태 다각을 이루고 있는 독특한 형태의 정자이다. 1795년 정조는 사도세자와 혜경궁의 회갑을 기념하여 화성에 다녀온 뒤 너무 기쁘고 즐거워서 부용정에서 규장각 신하들과 낚시를 즐겼다는 기록이 있다.
영화당(暎花堂)-영화당은 일대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현재 건물은 숙종 18년(1692년)에 재건한 것이다. 왕족의 휴식공간이자 이 건물의 앞마당인 춘당대에서는 친히 임금이 참석한 가운데 인재 등용을 위한 과거를 실시하였다. 영화당 현판은 영조의 어필이다.
애련지(愛蓮池)와 애련정(愛蓮亭)-숙종18년(1692년)에 만들어진 연못과 정자이다. 숙종은 『애련정기(愛蓮亭記)』에서 '연꽃은 더러운 곳에 있으면서도 변하지 않고 우뚝 서서 치우치지 아니하며 지조가 굳고 맑고 깨끗하여 군자의 덕을 지녔기 때문에 이러한 연꽃을 사랑하여 새 정자의 이름을 애련정이라 지었다'고 밝히고 있다.
수령 750년의 향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