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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행

융건릉, 용주사

by 두승 2009. 8. 2.

0 답사일시 : 2009년 8월 2일

0 융건릉 : 입장료-1,000원, 주차비-2,000원    

0 용주사 : 입장료-1,500원, 주차비-무료

능관리소

 

   매표소를 지나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묘인 융릉

 

 

  곤신지-풍수지리상 묘지에서 좋은 위치에 파는 연못

 

 

조선조 22대 왕인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는 당파싸움에 희생되어 뒤주 속에 갇혀 죽임을 당한 비운의 세자입니다. 어린아이였을 때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한 정조는 아버지의 무덤인 융릉을 사흘에 한 번씩 찾아가 참배할 정도로 효성이 지극했기에 융릉에 관한 관심 역시 지대했다. 그는 아버지의 영혼이나마 편안히 잠드시게 해드리고 싶다는 생각에 융릉의 주변을 푸른 숲으로 우거지게 하기 위해 나무를 심어 놓았다. 나무가 한창 자라나는 초여름의 어느 날 정조는 융릉을 찾았다. 아버지의 무덤에 참배를 끝내고 돌아오려는데 푸른 소나무의 잎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거의 없어진 것이 정조의 눈에 띄었다.

"황공하옵니다, 전하. 송충이가 생겨서 솔잎을 모두 갉아먹고 있습니다. 그래서 잎이 모두 없어진 걸로 아옵니다. 보살피지 못한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정조는 고개를 들지 못하는 좌우 신하들을 바라보며 비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찌 그것이 경들의 죄란 말이오. 모든 것이 다 효성이 부족한 과인의 부덕 때문이오."

정조는 바로 옆의 소나무로 다가가 기어가는 송충이를 슬픈 눈으로 내려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아버님이 잠드신 수풀을 갉아먹느니 차라리 내 불효한 창자를 갉아먹어라."

말을 마친 정조는 갑자기 송충이를 집어 꿀꺽 삼켜 버렸다. 신하들은 당황하는 한편 정조의 효심에 머리를 조아렸다. 정조의 효심에 감동했는지 그 뒤 어디에선가 새들이 날아와 송충이를 모두 잡아먹었고 숲은 푸르름으로 가득 찼다.

 

  홍살문-신성한 공간임을 알리는 붉은 칠을 한 문

 

  판위-임금이 가마에서 내리는 곳

 

  수라간-제사 음식을 차리는 부엌

 

  비각-묘비가 있는 곳

 

  묘비에는 사도 장헌세자 (思悼 莊獻世子)로 기록 되어있다. 아버지인 영조는 사도세자(思悼世子), 아들인 정조는  장헌세자(莊獻世子)로 불렀다.

 

  정자각-정(丁)자 형태이므로 정자각이라 한다.

 

 

 

 왼쪽으로 가면 정조와 효의왕후의 묘인 건릉 

 

 

  묘의 형태는 융릉과 비슷함

 

 

 

 

 

 

 

용주사-융건릉이 있는 화산의 동쪽 1.7km지점에 있다.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화산으로 옮기면서 절을 다시 일으켜 원찰로 삼았고 낙성식날 밤 정조가 꿈을 꾸니 용(龍)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여 절이름을 용주사(龍珠寺)라 했다고 전한다. 정조는 용주사를 중창할 때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을 목판에  새겨 보존하도록 명을 내리고 당대 제일의 화가 김홍도에게 맡겨 아름답게 꾸미도록 했다. 50여 목판과 함께  대웅전 옆 잔디밭에는 10개항에 이르는 부모은중경을 새긴 탑비가 우뚝 서 있다.    

 

 

 

 

  용주사 범종(국보 제120호)

 

  부모은중경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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