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해외 여행

성 프란치스코와 성녀 글라라의 고장, 아씨시

by 두승 2013. 3. 3.

0 여행일시:2013년 2월 26일

0 움브리아주는 이탈리아에서 손꼽히는 농경지대다. 밀밭과 올리브나무가 빚어내는 차장 밖 풍경을 감상하며 로마에서 버스를 타고  2시간 이동하면 수바시오(1280m)산 중턱의 중세도시 아씨시가 나온다. 아씨시는 고풍스러운 성당과 수도원 건물들에서 성스러운 분위기를 느끼고, 목가적인 전원 풍경으로부터 안온함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아씨시는 성자 중의 성자로 꼽는 프란치스코와 성녀 글라라가 태어나 일을 하고 잠든 도시이다. 이스라엘에서 로마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바라본 지중해의 구름이 너무 멋있다. 텔아비브 공항에서 로마공항까지 3시간 걸렸다. 



로마에서 버스로 2시간 걸려 아씨시에 도착했는데 중간에 분위기 좋은 식당에 들러 식사를 했다.


아버지 피에트로 디 베르나르도네와 어머니 피카 데 불레몽 사이에서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프란치스코(1182~1226)는 어릴 적에 화려한 옷을 즐겨 입고,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탐미주의적인 생활을 했다.


프란치스코의 부모


전쟁이 귾임 없이 계속되던 시절인 1204년 군대에 지원할 목적으로 길을 가던 중 스폴레토에 있을 때에 환시를 보았는데, 수많은 갑옷과 무기가 있는 방 안에 있던 중에 “주인을 섬기겠느냐? 아니면 종을 섬기겠느냐?”는 목소리를 듣고 “주인을 섬기겠습니다.”라고 응답하자 아씨시로 돌아가라는 말을 들었다는 것이다. 아씨시로 돌아간 프란치스코는 세속적 생활에 대해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로마로 순례를 떠난 그는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구걸하는 걸인들과 같이 생활하며 깊은 감동을 느껴 이후로 평생 가난한 삶을 살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프란치스코는 그렇게 좋아하던 운동은 물론 친구들과의 연회 참석도 피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성소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알고자 한적한 장소에 혼자 가서 시간을 보내곤 하였다.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그는 아씨시 인근에 있는 나환자촌을 찾아가 환자들을 간호했다. 이후 프란치스코는 가난한 은수자의 옷을 입고 2년 동안 통회의 삶을 살았다. 이 시기에 그는 아씨시 인근의 폐허가 된 성당들을 재건하는 일에 매달렸다.


1209년 교황 인노첸시오 3세에게 새로운 수도회 설립을 인준받은 프란치스코는‘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라는 정식 명칭을 갖게 된 이후에 길거리에 나가 낡고 헤어진 옷에 지팡이도 없이 맨발로 돌아다니며 복음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며 선행을 실천하라고 사람들에게 설교하기 시작했다. 그 후 수도회에 입회하려는 지원자 수가 나날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였다.


모로코에서 다섯 명의 프란치스코회 수사가 순교했다는 소식을 들은 프란치스코는 1219년 수사 한 명과 함께 순교할 각오를 하고 술탄을 개종시키기 위해 이집트로 갔다. 당시 그들이 도착한 곳은 다미에타라는 도시로 십자군이 1년 이상 포위 공격을 하고 있었다. 양측은 1219년 8월 29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4주 동안 휴전을 하기로 합의하였다. 이 때 프란치스코가 사라센 진영으로 넘어갔으며, 그들은 곧 사라센 병사들에게 체포되어 술탄 앞으로 끌려갔는데 프란치스코가 술탄 앞에서 기독교가 진리임을 입증하기 위해 주저함이 없이 불 속으로 걸어 들어갔으며, 조금도 화상을 입지 않고 무사히 빠져 나왔다고 한다. 그 후 술탄은 프란치스코를 시종일관 상냥하게 대접하였으며, 아무런 위해도 가하지 않고 십자군의 야영지로 돌려보냈다고 한다.


1224년 프란치스코가 40일 동안 베르나 산에서 단식 기도를 하고 있던 와중에 성십자가 현양 축일에 자신의 양손과 양발 그리고 옆구리에서 성흔(오상)을 받게 되었다. 프란치스코와 함께 있었던 레오 수사는 당시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확실한 기록을 남겼다.“갑자기 하늘로부터 찬란하고 불타는 여섯 개의 날개를 가진 세라핌이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그 천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와 같은 오상을 가졌는데, 그의 날개 중 두 개는 머리 위로 뻗쳤고, 둘은 날 수 있도록 펼쳐져 있고, 다른 둘은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 세라핌은 그에게 그리스도의 오상을 남겨주었다.”


아씨시 언덕 끝에 자리하고 있는 프란치스코 대성당은 성인의 타계 후에 지어졌는데,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2층 건물은 위 성당과 아래 성당이 포개진 듯하면서 유려한 미학을 과시하고 있다. 아래 성당에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유해, 평생 걸쳤던 누더기 등의 유품이 있다. 위 성당에는 르네상스를 이끈 화가라는 평가를 듣는 지오토가 그린 28폭짜리 프레스코화 '성 프란치스코의 생애'를 만날 수 있다.


자신의 죽음이 머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프란치스코는 인생의 마지막 시간을 성경과 영성 서적 등을 읽으며 죽음을 준비하였다. 1226년 10월 3일 해질 무렵에 프란치스코는 시편에 나오는‘큰 소리로 나 주님께 부르짖네’를 중얼거리며 선종하였다. 1228년 7월 16일 교황 그레고리오 9세는 프란치스코를 시성하였다. 




위쪽에서 바라본 프란치스코 대성당



이탈리아 아씨시의 귀족 가문에서 장녀로 태어난 글라라(1194~1253) 성녀는 어머니가 기도 중에 세상을 밝게 비출 빛을 얻으리라는 계시를 받고 태어났기에 '빛'이라는 의미를 지닌 이름(글라라)을 갖게 되었다. 글라라는 성 프란치스코의 열정적이고 기쁨에 찬 설교를 직접 듣고 그 형제들의 생활을 보면서 그러한 복음적 생활에 대한 강한 끌림을 느끼게 됐다. 이에 그녀는 1212년 18살 때, 성지주일 밤 가족들이 곤하게 잠든 사이에 집을 나서 프란치스코를 찾아가 그의 첫 여성 동료가 된다.


영적 지도자인 성 프란치스코를 따라 글라라는 세속을 완전히 떠나 예수 그리스도의 가난과 겸손, 사랑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베네딕토 수도원에 머물던 글라라는 부모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삭발한 자신의 머리를 보여주며 이를 뿌리치고 자신을 따라 복음적 생활을 함께 시작한 동생 아녜스와 함께 성 프란치스코의 도움을 받아 글라라 수도회를 창설했다. 수도회의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하며 겸손한 하느님의 여종으로 공동체 생활을 해나갔다.


그러다가 1240년, 글라라는 큰 기적을 행하게 된다. 아씨시에 사라센의 대군이 쳐들어왔고 아씨시의 시민들과 수도회의 가족들이 위기에 놓이게 되자 글라라가 성체에 의탁해 몸과 마음을 집중하여 기도를 했는데 수도회의 봉쇄구역까지 쇄도했던 사라센인들이 갑자기 발길을 돌려 달아나는 것이었다. 기도를 마치고 몸을 일으킨 글라라는 성광(聖光)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 후에도 글라라는 오로지 복음에 대한 믿음과 확신으로 작은 빵 하나로 50여명의 수녀들이 먹기에 충분할 만큼 불어나게 했고 많은 환자들의 병을 치유했다.


그레고리오 7세 교황이 된 후고리노가 수도원을 방문했을 때 추기경이 글라라에게 강복하기를 청하므로 곧 십자가를 그으며 식탁을 강복하자 돌연 그 위에 있는 빵마다 십자가의 표가 나타났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더욱이 1252년에는 병석을 떠나지 않고도 2㎞나 떨어진 성당에서 거행된 성탄 미사에 참례하는 기적을 보여줬다. 단순한 삶, 가난하고 헌신적인 봉헌의 삶을 살았던 글라라 성녀의 삶은 그 자체가 신비였다. 비록 프란치스코 성인과 달리 오직 수도원의 봉쇄 구역 안에서 평생을 살았지만 침묵, 청빈, 단식을 통한 기도생활을 하며 하느님과 세상과 함께 있었다.





글라라 성당 안에는 글라라 수녀가 입었던 수도복과 다미아노 십자가의 원본이 보관되어 있는데 순례자를 더욱 경건하게 해 준다. 


대리석 계단을 통해 지하로 내려가면 성녀 글라라의 무덤이 있다. 창살 사이로 보이는 성녀의 얼굴은 700여 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천사들의 성 마리아 성당(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리 성당)



성지순례 중 미사는 매일 드렸다.




'천사들의 성 마리아 성당'의 정원에 있는 장미에는 가시가 없다. 그런데 이 곳의 장미를 아씨시를 벗어나 다른 곳에 옮겨 심으면 가시가 생겨난다고 한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젊은 시절, 남자로서 느끼는 욕망을 없애 달라고 기도하면서, 장미 가시덤불 위에서 맨몸으로 구른 후 이 곳의 장미에는 가시가 없어졌다고 한다. 프란치스코 성인도 인간이기에 글라라 성녀와 한 집에서 다정하게 살고 싶은 생각을 했을 것 같다. 


'해외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탈리아 성 베드로 성당  (0) 2013.03.03
이탈리아 로마의 성당  (0) 2013.03.03
이스라엘 예루살렘  (0) 2013.03.03
이스라엘 베들레헴, 예루살렘  (0) 2013.03.03
이스라엘 갈릴래아  (0) 2013.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