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광역시 동구 화수동 동인천역 근처에 허름한 국수집이 있다. 이집의 주인은 서영남(베드로)씨이다. 그는 1954년에 태어났으며 1976년 한국 순교 복자수도회에 입회하여 1985년 종신서원을 하고 가톨릭 신학원을 졸업하였다. 1995년부터 교정사목(전국의 교도소를 다니며 장기수 면담활동)을 하던 중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 살기 위해 25년의 수사 생활을 마치고 환속하여 2001년 출소자를 위한 겨자씨의 집을 열었으며 2003년 4월 1일 노숙자들을 위한 무료식당인 ‘민들레 국수집’을 열었다.
교정사목을 하는 목요일과 금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문을 여는 민들레국수집에서는 자유 배식을 한다. 넓은 접시에 먹고 싶은 만큼 담아 마음 속 허기가 찰 때까지 몇 번을 먹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자유배식을 하는 것은 손님들에게 자발적인 힘을 길러주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민들레 국수집>에는 ‘국수’가 없다. 처음 식단은 국수였지만, 국수로는 손님들의 배가 부르지 않아 메뉴를 변경했다.
이곳은 현실과 동떨어진 지원책을 내놓는 정부의 보조금과 부자들이 생색내며 하는 기부금을 받지 않는다. 후원회 조직과 예산확보 프로그램도 없다.
“남는 것을 주는 게 아니라 자신이 가장 아끼는 것을 주는 게 ‘사랑’이죠. 사랑하는 사람에겐 아끼는 것을 주고 싶잖아요? 홀로 사시는 할머니에게 한 포대, 거동이 불편하신 할아버지 댁에 한 포대 쌀을 나누어 주자마자 호남에서 누군가 보내온 쌀이 도착합니다. 비워진 만큼 채워지는 거짓말 같은 사랑이 여기서는 흔한 일입니다.”
길가다 과자 몇 박스를 놓고 가는 분의 뒷모습, 폐지를 모아 번 돈을 내놓는 할머니, 일 년간 월요일마다 점심을 굶고 모은 돈을 가져오신 집배원 아저씨의 수줍은 웃음, 수시로 찾아와 봉사하는 착한 이웃들이 <민들레 국수집>을 지탱해 온 힘이다.
수도원 수사 시절인 1988년, 필리핀에 파견 돼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낯선 땅에서 힘들게 지냈던 영남 씨. 당시 가난하지만 착한 마음씨를 가진 필리핀 사람들이 따뜻하게 대해 주었던 친절함은 그의 가슴에 항상 남아있었다. 그래서 언젠가 기회가 되면 꼭 필리핀에 도움을 줘야겠다는 마음이 있었고, 이를 계기로 필리핀의 ‘민들레 국수집’ 이라는 꿈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2014년 4월 22일 그토록 꿈꾸던 ‘민들레 국수집’이 칼로오칸 시티에 세워졌다.
그는 이곳의 가난한 아이들이 배고픔 없이 공부할 수 있도록, 정성스럽게 만든 음식들을 배불리 먹게 하고 있다. 생색내지 않은 도움, 주눅 들지 않게 하는 베품을 실천하며 나누는 행복을 보여주고 있다. ‘민들레 국수집’이 위치한 칼로오칸 시티는 얼마 전, 큰 화재가 났다. 그로인해 이곳에 살던 많은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 그들은 공동묘지 뒤의 자투리땅에서 노숙을 하거나 지붕도 없이 비닐이나 판자로 얼기설기 만든 공간에서 곤곤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한 집에 최소 다섯 명에서 일곱 명, 많게는 열 명이 넘는 대가족이 일정한 수입도 없어 한 끼의 식사조차 허락되지 않는 집이 대부분이다. 빈곤의 악순환인 자신들의 삶을 원망할 법도 한데, 어찌된 일인지 이들은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물바다가 된 골목에서 수영을 하고, 집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며 이 또한 삶의 일부분이라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 그들은 더 잃지 않아 감사하며, 햇볕과 바람과 비와 대지에 은총을 느끼며 산다. 그러한 모습들을 통해 희망을 발견하고, 나눔이 주는 행복에 더욱 큰 확신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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