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그리스도교)는 성서를 경전으로 삼고 유일신인 여호와와 그의 아들 예수를 믿는 종교이다. 따라서 기독교는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른다고 주장하는 모든 종교들을 총칭하여 일컫는 보편적 단어이다.
기독교는 유대교 구약 성경에 나오는 계시의 전통과 역사성을 계승하였다. 기독교는 초기 발생기에 로마 제국의 탄압을 받았지만, 313년에 로마 제국의 공인을 받았다. 4세기 무렵에는 로마를 포함한 여러 나라의 국교가 되었고, 이후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 지역으로 전파되었다. 초기 기독교는 예수가 팔레스타인지역에서 활동한 때와 그의 죽음 이후 사도들이 교회를 이끌던 1세기 무렵부터 제1차 니케아 공의회가 열린 325년까지의 기독교를 말한다.
초기 기독교는 베드로, 바오로 같은 사도와 선지자들이 회중을 순회하고 다녔으며 지역마다 많은 단체가 형성되었고, 사도들이 신자들에게 성경의 가르침과 예수의 새로운 가르침을 따를 것을 지시하였는데, 계시록에서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의 교리 일치 여부와 역사, 행위들에 대해 상세히 언급하고 있는 사실을 보면, 이미 기원 1세기에 매우 체계화된 조직과 교리가 형성되고 완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1세가 밀라노 칙령을 발표하여 기독교에 대한 박해를 중지하였다. 325년부터 일곱 번의 공의회 과정을 통해 가톨릭주의가 만들어졌고 380년에는 테오도시우스 1세가 테살로니카 칙령을 선포하고 기독교를 로마 제국의 국교로 삼았다.
중세에 접어들어 로마 가톨릭의 교황과 동방정교회의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는 서로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고 여러 가지 불화 끝에 결국 분열하였다. 공식적 분열은 성령에 대한 신학적 논쟁으로 발생하였지만, 사실 이 두 그리스도교가 나뉜 것은 그보다 훨씬 이른 로마 제국사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콘스탄티누스 1세는 330년 제국의 수도를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플로 옮겼고, 이후 라틴어를 쓰는 로마와 그리스어를 쓰는 콘스탄티노플은 필연적으로 언어·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이질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처지에 이르게 되었다. 결국 1054년 7월 16일 교황 대사 훔베르토 추기경이 콘스탄티노플 성소피아 성당 미사에서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를 파문하였다. 이후 로마 서방 교회와 콘스탄티노플 동방 교회는 완전히 갈라져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다. 동서 교회의 분리 이후, 십자군 전쟁 과정에서 로마 가톨릭은 동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점령하기까지 하였다.
16세기에 들어 로마 가톨릭을 신봉하던 서유럽과 북유럽에서 여러 개신교들이 세워지는 종교 개혁이 있었다. 로마 가톨릭과 결별하여 새로운 교파를 세운 이유는 로마 가톨릭이 부정부패에 대한 비판을 탄압하고 로마 교황청의 간섭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각 국 군주의 불만이 쌓여 있었는데, 교황청에서 성 베드로 대성당을 짓는데 필요한 돈을 모으기 위해 헌금 증서인 사면부 판매를 허용하자 사제는 교회에 예속되지 않아도 된다는 만인 사제론적 견해를 가진 루터(로마 카톨릭 수도회 신부)가 1517년 이를 반대하는 반박문을 발표하였다. 루터는 오직 성경과 믿음, 은총에 의해서만 인간은 구원받을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믿음에 의해 삶이나 행동이 변화하는 것은 최후의 심판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고 최후의 심판에는 오직 신앙과 믿음 자체가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는 개신교의 전통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청빈, 절제, 순명하는 수도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루터가 교황청에서 파문당한 후(1521년) 제일 먼저 한 일은 수녀원을 이탈한 수녀와 결혼한 일이다. 교회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세력을 넓히려 했던 지방 제후들도 루터를 지지하였다.
한편, 스위스 제네바에서는 칼뱅에 의해 종교 개혁이 진행되었다. 칼뱅은 루터의 교리를 더 발전시켜 예정설을 주장하였다. 예정설이란 인간이 구원을 받느냐 못 받느냐는 신이 미리 정해 놓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신이 구원을 예정한 사람은 그 증거로서 성실하고 근면하다. 따라서, 성실하고 근면한 생활로 부를 축적하는 것은 신의 의지에 부합하는 행동이라고 강조하였다. 칼뱅의 교리는 상공인들에게 환영을 받아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스코틀랜드 등지에 전파되었다. 로마 카톨릭과 개신교는 격렬한 갈등을 겪었고, 결국 위그노 전쟁, 30년 전쟁과 같은 종교 전쟁을 치렀다.
성공회의 기원이 되는 영국 교회(the Church of England)는 16세기 유럽에서 시작된 종교개혁의 연장 선상에 있다. 특히 마르틴 루터 등의 대륙 종교개혁 사상이 전해져 영국 내에서도 개혁이 움트고 있었다. 당시 영국을 지배하던 로마 가톨릭 교회에 대한 반발과 영국 교회의 정치적 분립을 원했는데 혼인무효(annulment)와 관련한 영국 왕의 개인적 문제 등이 겁쳐 1534년 영국 왕 헨리 8세는 수장령을 선포하여, 영국 교회의 독립을 선언했다.
가톨릭교회(천주교)는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 제1대 교황으로부터 현재의 266대 프란치스코 교황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의 교회가 일치를 이루고 있는데 반하여 개신교는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수많은 분파로 나뉘어 있고, 오로지 자신들의 교세 확장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개신교 교파는 세계 2만여 개의 분파가 있으며, 대한민국에는 약 200~250개 이상의 교파가 있다.
기독교는 교회사에서 두 차례 일어난 교회의 분열을 통해 로마 가톨릭교회, 동방정교회, 개신교의 3대 군(群)으로 나누어져 있는 실정인데 1910년 에딘버러에서의 제1회 세계선교회의를 통해 세계교회 일치운동을 발족하게 됐다. 에큐메니컬 운동(Ecumenical movement)은 교파나 교단의 차이를 초월하여 모든 기독교 신자의 일치 결속을 도모하는 세계교회 일치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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