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기독교 신앙의 시초는 1779년 앵자산의 낡은 폐찰, 천진암에서 이벽, 이승훈, 정약용, 정약종, 권일신, 권철신 등이 강학 모임을 통해 교리를 연구하고 신앙을 실천하기 시작하면서 부터이다. 이어 중국 북경에 파견된 이승훈이 1784년 ‘베드로’라는 본명으로 세례 성사를 받고 귀국한 뒤 지금의 명동성당 근처의 명례방에서 정기적인 신앙 집회가 이루어지며 신앙 공동체가 태동 되었다. 한국 천주교회는 선교사가 아닌 평신도들이 자발적으로 신앙을 받아들였고 신앙의 싹이 자라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한국 천주교회는 설립된 이후 100년 동안 혹독한 박해를 겪었는데 무려 만 명에 가까운 신앙 선조들이 순교하였고 교회 창립 200년 후인 1984년 한국 천주교회는 신앙생활이 모범적이고 순교 기록이 확실한 103위를 성인으로 모시게 되었으며 2014년 8월 16일, 누락된 초기 순교자 124위 시복식을 거행하게 되었다.
시복이란 신앙이나 순교로 이름 높은 사람을 복자품(福者品)에 올리는 것을 의미하고 복자는 특정 지역의 교회에서 그를 공경하도록 하는 것이며 성인은 전 세계 모든 천주교 신자가 공경하는 분을 말한다. 서양에서는 순교자가 아니어도 주님의 뜻에 따라 거룩하게 살며 교회에 공적이 많은 분들도 성인 반열에 오르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그런 분은 없고 배교를 하면 살려준다고 하는데도 목숨을 바쳐 신앙을 지킨 순교자들이다. 관례적으로 시복식은 교황청 시성성 장관이 하시는 것으로 되어있는데 이번 우리나라에서의 시복식은 교황님이 직접 주관 하신다는데 의미가 더 크며 교황님의 한국 방문으로 분단된 우리나라에 평화와 화해의 선물이 풍성히 내렸으면 한다.
시복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새벽 4시에 성당에 모여 교우들과 4대의 버스에 나눠 탄 뒤 광화문에 도착하여 식전 행사를 하였고 교황님이 주관하는 시복미사는 10시에 시작되었다.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가까이에서 교황님을 뵐 수도 없고 배정된 좌석이 구석진 곳이어서 불편하였지만 교황님이 주관하는 미사에 참석한 것만으로도 마음이 뿌듯하고 기쁨이 넘쳐 즐겁고 보람 있는 하루가 되었다.
시복미사에 참석하여 직접 찍은 사진과 인터넷에서 다운 받은 사진을 몇장 올려본다.
식장에 들어가기 위하여 줄을 서고 있다.
지정된 좌석을 찾는 것도 쉽지않다.
교황님이 지나가고 계신다.
군중속에서 아이를 발견하고 축복을 내려주고 계신다.
카퍼레이드 도중 세월호 유가족들이 모인 곳에 도착하자 차에서 내려 김유민양을 잃고 34일째 단식 중인 김영오씨의 두 손을 맞잡고 아픔을 달래주고 계신다.
시복식에는 100만 명 가량의 사람들이 참석하여 인산인해를 이뤘다.
미사가 끝나고 자신의 쓰레기를 챙겨 질서정연하게 귀가하는 모습
차가 없는 시청앞 대로에서 인증샷
교구별 좌석 배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