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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생활

천국에 가는 길

by 두승 2014. 1. 23.

 

  요즘도 지하철이나 거리에서 ‘예수 천당, 불신(不信) 지옥’ 이라는 전도 구호를 부르짖는 사람들을 가끔 목격할 수 있다. 예수를 믿어야만 천당에 들어가고,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죽어서 지옥에 떨어져 활활 타는 유황불 속에서 영원한 고통을 겪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신앙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갖고서 사람들 앞에서 당당히 외치는 그들의 거침없는 용기는 부럽기도 하다. 그렇지만 맹목적적인 믿음만이 천국에 가는 길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신약성서에서 ‘하늘 나라’(天國)는 마태복음에만 나오고 다른 곳에서는 “하느님 나라”라고 표현한다. 그러므로 ‘하늘 나라’는 유다교적 색채를 짙게 띠고 있는 마태복음의 독특한 용어라고 할 수 있다. 아마 거룩하신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기를 꺼리는 마태 공동체의 보수적인 신앙 분위기를 감안하여 마태복음 기자는 하느님을 하늘로 우회적으로 표현한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하느님 나라’는 공간적 개념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의 통치권이 확립되고 그분의 뜻이 실현되는 이상 사회를 가리키는 정치적 개념으로 보아야 한다는 게 신약성서 학자들의 일반적 견해다.


  이 간단한 두 가지 사실만 놓고 보더라도, 사람이 죽어서 가는 천국을 유달리 강조하는 한국 교회 풍토는 문제가 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친히 가르쳐 주신 ‘주님의 기도’에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라고 하듯, 성경에서 강조하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 이 땅에 실현되는 것인데, 이 점을 망각하고 사후(死後)에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마치 그리스도교 신앙의 목표요 핵심인 양 이야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살며 한평생 시골 교회당 종지기로 봉사했던 권정생 선생. 평생 새 옷을 거의 입어 보지 못하고 종이 한 장도 아껴 사용하며 항상 검은 고무신과 낡은 셔츠 차림으로 5평 남짓한 오두막에서 가난하게 살았던 그분은 ‘세상에서 가장 맑은 그리스도인’이었다.


  우리나라 아동문학의 최고봉으로 평가되는 <강아지 똥>을 비롯해 <하느님의 눈물>, <몽실 언니> 등의 동화와 <오물덩이처럼 뒹굴면서>, <우리들의 하느님> 같은 수필집 등 수십 편의 주옥같은 작품을 써서, 욕심을 부렸더라면 인세만 갖고서도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었을 테지만, 통장에 차곡차곡 쌓인 10억 원 가까운 인세를 북한 어린이들을 위해 써달라는 유언을 남기신 분. 정말이지 하느님 마음에 쏙 들었을 티 없이 맑은 영혼과 순수한 믿음으로 평생을 살았기에 천국이 있다면 그곳에 들어가고도 남았을 그분이 딱 잘라 말한다. “천국은 우리가 쳐다보는 저 먼 어느 공중에 있는 게 아니다. 그 천국은 이 땅 위에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설혹 천국이 아름다운 보석으로 꾸며져 우주 바깥 어느 곳에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은 세상 끝나는 날 하느님의 계획에 맡겨 두고 우리는 우리 할 일을 해야 한다. 이 땅에서 우리가 해야 할 임무를 다하지 않고 어찌 하늘의 영광을 기대하겠는가.”  여러 해 전에,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천국’에 대한 그동안 아리송했던 생각들이 말끔히 정리되는 느낌이 들었다. 천국이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하느님이 만든 이 땅에서 우리는 우리 할 일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하늘의 영광을 기대하겠는가.


  마태복음 25장 31~40절에는 ‘최후의 심판’ 이야기가 있는데 심판을 주관하는 임금은 천국에 들어갈 사람들에게 말한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이 ‘최후의 심판’ 이야기에서, 천국행과 지옥행을 판가름하는 것은 맹목적 믿음이 아니다. 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른 자에게 마실 것을 주고, 헐벗은 자에게 입을 것을 주고, 병든 자를 돌보는 등 착한 행동을 실천했느냐 여부가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형벌”을 결정짓는 것이다.
                                                                                                                               정연복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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