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저지주에 1980년대부터 15년간 6억달러를 익명으로 기부해온 ‘얼굴 없는 천사’가 있었다. 그의 신원은 1997년에야 밝혀졌다. 공항 면세점을 운영하던 찰스 피니가 면세점 매각 소송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그의 오랜 기부 기록이 드러났다. 그는 집도 자동차도 없었다. 손목시계도 15달러짜리였다. 그는“그저 돈이 너무 많다고 생각해 기부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기부라면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 같은 저명인사부터 떠올리지만 사실은 이름 없는 이들이 더 열심이다. 미국 시러큐스대 경제학자 아서 브룩스는 ‘누가 진정 관심을 갖는가’라는 책에서 연간 소득 2만 달러 미만인 사람들의 소득 대비 기부액 비율이 그 이상 소득자보다 높더라고 했다. 미국인 10가구 중 9가구가 매년 일정액을 기부한다는 통계도 있다. 무명의 ‘개미 기부자’들이 미국을 기부 대국으로 떠받치고 있는 것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이리시(市) ‘커뮤니티재단’에 익명 기부자가 1억 달러를 맡겼다. 재단은 노숙자센터, 푸드뱅크, 여성센터, 장애자 지원단체, 대학까지 46곳에 100만~200만달러씩 나눠주기 시작했다. 재단측은 “기부자가 신분이 밝혀지기를 원치 않는다”며 입을 다물었다. 다만 기부자는 성금을 어디에 쓸지를 몇 년 동안 재단과 상의해 왔다고 한다.
2005년 정초 방송사 모금행사에 입성 허름한 노인이 봉투를 놓고 갔다. 봉투 안엔 30억 원이 들어 있었다. 노인을 추적해보니 전남 함평에서 18세 때 상경해 남대문에서 평생 장사를 하며 살아온 이남림씨였다. 이 선행 뒤에 광교신도시 계획이 나오면서 그가 사뒀던 수원 땅 8,000여㎡의 시가가 40억 원으로 치솟았다.‘덕을 쌓으면 반드시 경사가 있다(積善之家 必有餘慶)'는 옛말 그대로다.
기부·자선사업가를 뜻하는 레인메이커(rainmaker)는 원래 가뭄에 비를 부르는 인디언 주술사를 가리키는 말이다. 1달러 기부가 사회에 19달러의 수익을 창출한다고 한다. 메마른 대지를 풍요롭게 적시는 단비 그 자체다. 아서 브룩스는 열성적인 기부자일수록 성공 확률이 더 높아지고 수입도 더 늘어난다고 했다. 선행이 기부자 스스로를 더 훌륭하고 긍정적인 사람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나눔은 나눠주는 사람부터 행복하게 해준다.
[문갑식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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