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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방

현인과 거북이

by 두승 2015. 2. 15.


  ‘나는 지금까지 어떤 왕도 누려 보지 못한 재산과 권력을 한 손에 틀어쥐고 있어. 모든 기쁨과 모든 쾌락은 다 나의 것이지. 그런데도 왜 이렇게 외로운 걸까?  나에게는 친구도 없어. 신하들은 믿을 수도 없고, 모두들 야비한 이중인격자인 것 같아. 그래서 나에게는 믿을 수 있는 친구가 필요해.’ 이런 생각을 하던 왕은 신하들을 불러 놓고 절망에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친구가 한 사람 있었으면 좋겠소, 누군가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 믿고 내 속마음을 털어 놓을 수 있는 친구 말이오." 그러자 신하 중에 한 사람이 대답했다.
"폐하! 그런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제가 하나 알고 있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 이 궁궐을 떠난 사람인데, 아마 지금 산속에 살고 있을 겁니다. 히말라야에서 기도와 묵상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지요. 이름은 수브하난다라고 하는 현인이랍니다." 그러자 왕이 말했다.
"지금 당장 달려가서 그 사람을 모셔 오시오. 국왕인 내가 그를 필요로 한다고 말이오. 오기만 하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들어 준다고 약속하시오. 설령 내 나라 반을 떼어준다 해도 아깝지 않으니까."


  다음 날 아침 일찍, 신하들은 왕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사람을 찾아 궁궐을 나섰다. 그들은 오랜 여행 끝에 이윽고 히말라야 부근의 맑고 시원한 시골 마을에 도착했다. 드디어 저 멀리 강둑에 혼자 앉아 있는 한 사람의 현인이 눈에 띄었다. 기도라도 드리는 듯, 주변에는 죽음 같은 정막이 깃들어 있었다. 신하들 가운데 한 사람이 말했다.
"저 현인을 좀 보게. 저 사람이 수브하난다라는 현인일까? 그럴 리가 없지 초라한 행색을 좀 보게나. 하지만 어차피 손해 볼 것은 없으니, 가서 물어 보기나 하세."
"성스러운 현인이시여!  선생님이 수브하난다라는 현인이십니까?" 그러자 그 현인은 그렇다는 뜻으로 보일 듯 말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그러자 신하들이 말했다.
"지금 국왕께서 선생님을 궁궐로 모셔 오라고 저희들을 보내셨습니다. 폐하께서는 선생님이 믿을 수 있는 진실한 친구가 되어 주시기를 간절히 원하고 계십니다. 선생님께서 원하신다면 폐하의 재산 반이라도 선생님에게 나누어 드리겠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오랜 침묵이 흐를 뿐 현인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선생님! 아무 말씀이 없으신데 그 침묵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제발 부탁이니, 대답해 주십시오. 궁궐로 가시겠다는 뜻입니까?"


  이윽고 그 현인은 천천히 오른손을 들어 무언가를 가리켰다. 그러니까 바로 옆 바위 위에서 햇볕을 쬐고 있는 거북이를 가리키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대들도 저 거북이가 보이시지요? 참으로 차분하고 조용하지 않습니까? 저 거북이도 나름대로 햇볕과 물과 밤낮을 즐기고 있고, 자유도 마음껏 누리고 있지요. 임금님도 궁궐에 저런 거북이를 가지고 계신지요?"
"아, 물론이지요, 폐하께서도 저렇게 큰 거북이를 직접 방에서 기르고 계십니다. 그 거북이는 황금과 다이아몬드, 진주 등을 비롯한 갖가지 값비싼 보석들로 화려하게 치장해놓았습니다. 도저히 값을 따질 수 없을 정도이지요."
"음! 그렇다면 어디 내 말에 대답해 보시오. 저기 있는 저 거북이가 임금님의 궁궐에 있는 거북이와 자리를 바꾸자고 하면 과연 거기에 응할 것 같습니까?"  신하들은 모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윽고 현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가서 폐하에게 전하시오. 현인 수브하난다는 저 거북이와 마찬가지로 자리를 바꾸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말이오. 나는 내 인생과 자유를 사랑하고 있소. 궁궐에 사는 사람 중에서 나처럼 자유롭게 살아가면서도 목숨이 붙어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소금 인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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