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자비의 특별 희년을 맞이하여 좀 더 변화된 모습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올해는 어느 곳에 후원을 할까 망설이다가 ‘가난한 이들의 작은 자매회’에서 운영하는 평화의 모후원을 선택했다.
‘가난한 이들의 작은 자매회’는 성녀 쟌 쥬강(St. Jeanne Ju gan)에 의해 시작됐다. "너희가 내 형제 가운데 가장 작은 이들 중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라는 주님의 말씀을 온 몸으로 실현하고자 노력하는 수녀회인데 그녀들의 유일한 사도직은 가난한 어르신들을 섬기는 일이다. 회원들은 청빈, 정결, 순명 세 가지 서원 외에 가난한 어르신들을 기쁘게 맞아들여 정성껏 섬기겠다는 '환대서원'을 한다.
1971년 한국에 진출한 ‘가난한 이들의 작은 자매회’는 극동아시아관구 소속으로, 쟌 쥬강의 집(서울 화곡본동)을 비롯해 평화의 모후원(수원시 장안구 조원동), 성 요셉동산(전북 완주), 예수 마음의 집(전남 담양) 등 4개의 분원에서 220여 명의 어르신을 섬기고 있다.
쟌은 1792년 10월 25일 프랑스 브르따뉴 지방 조그만 어촌에서 태어났다. 쟌의 아버지 죠제프 쥬강은 쟌이 4세 되던 해에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실종돼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쟌은 혼자 어렵게 살림살이를 꾸려나간 어머니 슬하에서 기도와 교리, 읽고 쓰는 법, 뜨개질 등을 배우며 성장했다.
15세가 됐을 때 쟌은 대저택의 부엌일을 돕는 일자리를 얻었다. 부엌일을 하면서도 주위의 가난한 사람들, 노인들을 방문해 온정을 베풀곤 했다. 쟌의 착한 심성을 알았던 청년이 그녀에게 청혼을 하기도 했지만 그녀는“하느님께서 저를 원하십니다.”라며 그의 청혼을 거절했다. 그 후 쟌은 자신도 모르는 어떤 소명을 기다리며 살았고, 47세 중년이 될 때까지 긴 성숙기를 거치게 된다.
1839년 초겨울 어느 날,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 맹인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은 쟌으로 하여금 더 이상 주저할 수 없는 어떤 용단을 내리게 했다. 그녀는 할머니를 등에 업고 좁은 층계를 걸어 올라와 자신의 침대를 내어주고 자신은 다락방에서 살았다. 얼마 되지 않아 또 한 명의 노인을 데려왔고 이렇게 식구는 점점 늘어났다. 이 일에 다른 두 명의 처녀가 합세, 규칙적인 기도와 공동생활을 함으로써 ‘가난한 이들의 작은 자매들’이라는 새로운 공동체가 시작됐다.
‘가난한 이들의 작은 자매회’는 정부 지원 없이 오로지 수녀들의 모금으로 무료 양로시설을 운영하는 수도회다. 주변 상점이나 사무실 또는 성당을 돌아다니며 후원금을 모금한다. 수녀들은 이러한 모금을 '동냥'이라고 거침없이 표현한다. 쟌 쥬강이 바구니를 들고 나가 빵을 얻어다 노인들을 봉양한 그 정신을 그대로 받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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