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공이란 한국 가톨릭교회에서만 특별히 행해지고 있는 제도입니다. 교우들이 적어도 한 해에 두 번 이상 의무적으로 고해성사를 하도록 만들어 놓은 장치입니다. 판공(判功)은 봄과 초겨울 두 번 행합니다. 사제를 통해 공로를 판단받게 된다는 의미인 듯합니다. 한국 교회에서 전통적으로 써 온 말이라 해도 뜻은 좀 부담스럽게 다가옵니다. 고해성사를 통해 믿는 이들이 우선적으로 경험해야 할 것이 하느님의 자비여야 할 텐데 자신의 삶을 평가 당한다는 것을 알고 고백소를 찾아가기는 더더욱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부활 전과 성탄 전에 행해지는 고해성사를 특별히 판공성사라고 불러 왔고, 이 기간이 되면 본당은 구역 안의 각 교우들 앞으로 판공성사표를 전달해 왔습니다. 판공성사를 삼 년 동안 한 번도 안 보면, 교회는 그 사람을 냉담자로 간주해 왔습니다. 이리하여 판공성사 기간에 고백성사를 하지 않으면 마음에 부담이 더 커져서 아예 더 긴 방학에 들어가는 신자들이 생겨났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오래된 전통이 신자들의 심적인 어려움을 덜어 주는 방향으로 개선되었습니다. 2014년에 주교회의에서는 사목지침을 수정하여 '일 년 중 어느 때라도 고해성사를 받았다면 판공성사를 받은 것으로 인정한다'고 해 놓았습니다. 이런 지침에 덧붙여 올해 추계정기총회에서는 판공성사표의 안내 문구도 새롭게 다듬었습니다. '혹시 판공성사 기간 내에 성사를 보시기 어려우면, 판공성사 기간 이후라도 성사를 보시고 성사표를 제출하시면 됩니다' 라고 말입니다.
주교회의의 이런 조치는, 더 많은 신자들이 고해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할 수 있도록 이끄는 사목적 배려입니다. 지난 12월 8일에 선포된 자비의 특별희년의 의미와도 조화를 이룹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자비의 희년 칙서 '자비의 얼굴'에서 고해성사를 중시한다면, 우리가 하느님의 위대하신 자비를 직접 깨닫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개정된 한국교회의 사목지침을 통해서 보면, 판공성사를 꼭 봐야 할 의무는 사라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능하면 정기적으로 고해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하려는 개인 차원의 노력은 계속 이루어져야 될 것입니다.
박종인(요한) 신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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