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그러하셨듯이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복음 선포의 우선적 선택의 대상도 언제나 ‘가난한 이들’ 입니다. 교황님은 어떠한 교회 공동체든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으면 영적 세속성에 빠진 무모하고 공허한 모임일 뿐이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교황님은 세상에 약한 이들이 많이 있는데 어떻게 아무 일도 없는 척하며 살 수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이는 마치 동생을 죽이고도“ 네 아우는 어디 있느냐?”(창세 4,9) 라는 하느님의 질문에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라고 반문하는 카인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교황님은 이 대목에서 개인적인 노력의 한계성을 인정하십니다. 그래서 가난한 이들을 개별적으로 돕는 일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되겠지만, 더 장기적으로는 ‘불평등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해야 한다고 말씀 하십니다. 불평등의 구조를 바꿀 길은 정치에 개입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가 이 땅에 발붙이고 이 땅에서 하느님의 나라가 실현되게 해야 하는 가시적 공동체라는 점에서 분명 정치와 동떨어진 무엇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세상의 불의에 대해 침묵해서는 안 됩니다. 「사목헌장」은 교회가 “인간의 기본권과 영혼들의 구원이 요구할 때에는 정치 질서에 관한 일에 대해서도 윤리적 판단을 내리는 것은 정당하다.” 고 말하고 있습니다. 전임 교황 베네딕도 16세 또한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를 통해 “교회는 정의를 위한 투쟁에서 비켜서 있을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됩니다. 교회는 이성적인 토론의 길로 그러한 투쟁에 들어서야 하며, 그 정신적인 힘을 다시 일깨워야 합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현 교황님 또한 개인주의나 무관심주의, 이기주의에 사로잡혀 복음에 어긋나는 정책을 보면서도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하는 부끄러운 굴레에 머물지 말기를 권고하십니다.
따라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배려를 하는 정부에게 투표를 하는 것도 복음화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교회는 우선적으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정책을 펴나갈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야하며 신자들은 그러한 교회의 목소리에 힘을 더해 주어야 합니다.
전삼용(요셉) 신부, 수원교구 복음화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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