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 사람들이 “엄마” “할매”라고 불렀던 마리안 스퇴거(82)와 마거릿 피사렉(81) 수녀. 1962년 꽃다운 나이인 20대 후반에 한센인들이 사는 소록도에 들어와 꼬박 43년간 봉사하다 일흔이 넘은 2005년 11월22일 “소임을 다했다”며 홀연히 고향 오스트리아로 향했다. 떠날 때 여행 가방 한 개씩이 짐의 전부였던 두 수녀가 남긴 편지에는 부족했던 자신들을 용서해달라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소록도 성당
전남 고흥군 소록도는 일제강점기인 1916년 5월17일에 자혜의원(국립소록도병원 전신)이 세워졌으니 올해로 병원 설립 100년이 된다. 세상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과 함께 천형의 땅으로 버림받았던 소록도. 섬의 모양이 어린 사슴을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소록도. 하지만 말이 병원이지 한센인들은 노역과 감금, 강제 불임수술 등 오랜 아픔의 세월을 견뎌야 했다. 광복 후 강제 수용은 풀렸지만 한센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피해 숨어 살아야 했다. 하지만 1984년 교황의 소록도 방문을 계기로 편견이 깨지기 시작했다. 정부 지원도 늘었고 자원봉사자와 관광객 등 해마다 30만명이 찾고 있다.
어제 국립소록도병원 복합문화센터 준공식에 초대를 받아 마리안 수녀가 11년 만에 소록도에 다시 찾아왔다. 병상에 있는 마거릿 수녀는 함께 오지 못했다. 그동안 언론과 단 한 차례도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는 마리안 수녀는 이날 국립소록도병원에서 처음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그는 먼저 “아름다운 섬에 다시 와 정말 기쁘다. 환자들 고생이 많았는데 병원도 집도 새로 깨끗해지고 모두 애써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며 되레 고마워했다. 43년간 소록도 삶에 대해선 “예수님 복음대로 살려고 했고, 사람들을 도우며 살고 싶었다. 간호사 입장에서 한 일이지 특별히 한 일은 없다”면서 “환자들이 치료를 마치고 가족들 품으로 돌아갈 때 가장 기뻤고, 완전히 낫고도 가족에게 못 돌아갈 때 가장 가슴 아팠다”고 말했다.
소록도를 다시 찾은 마리안 수녀(왼쪽)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간호대학을 졸업한 마리안 수녀와 마거릿 수녀가 소록도에 왔을 당시 한센인에 대한 오해와 편견은 극심했다. 그러나 두 수녀는 맨손으로 한센인의 피고름을 짜내고 약을 발라주며 치료했고, 한센인들에게 했던 천대와 반말을 친절과 존중으로 바꿔놓았다. 또 한센인을 집으로 초대해 한 밥상에서 식구처럼 함께 식사했다. 생일을 ‘저주받은 날’로 여기던 그들에게 케이크를 만들어 탄생을 축하했다. 존재 자체가 절망인 사람들에게 생명의 존귀함과 삶의 희망을 전한 것이다. 마리안 수녀는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나 고통 받고 있는 사람, 그들 안에 모두 예수가 있다고 생각하며 도와야 한다”며 사랑의 실천을 강조했다. 국내 유일의 강제격리시설 지역이었던 소록도는 한때 한센인 포함, 거주민이 6000여명에 이를 만큼 수많은 이들의 절망과 눈물, 땀과 희망이 교차한 곳이기도 하다.
과거 마리안 수녀(왼쪽)와 마거릿 수녀(오른쪽)가 한센인을 돌보던 모습.
2005년 소록도성당 보좌신부로 두 수녀와 함께 생활한 김연준 신부(47)는 “두 수녀님은 엄마가 돼 주셨다. 그분들의 사랑은 또 다른 사랑을 낳고 있다”고 밝혔다. 소록도병원에서 7년간 일한 최연정 세실리아 수녀는 지난해 “두 수녀님과 같은 사랑을 실천하고 싶다”며 볼리비아 빈민지역으로 떠났다. 2018년엔 소록도성당과 한센인들의 성금을 바탕으로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마리안과 마거릿 기술학교’가 설립된다. 두 수녀의 헌신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도 올 연말 나올 예정이다. 전라남도는 개원 100년을 맞은 소록도 병원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할 예정이며, 고흥군도 40여년 동안 한센인을 돌본 오스트리아 출신 마리안과 마가릿 수녀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하기로 했다.
이제 고령의 한센인 530명만이 남아 있는 소록도는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한센인’의 역사를 마감하겠지만, 절망 속에서도 손을 내밀어 존귀한 삶을 이어가도록 한 따뜻한 인간애는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두 수녀는 한센병에 걸렸다는 이유로 부모마저 자식을 버렸던 ‘아픔의 땅’ 소록도를 ‘사랑과 치유의 섬’으로 재탄생하게 만든 사람들이다.
김희연 기자,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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