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29일, 폴란드 아우슈비츠수용소를 프란치스코 교황이 찾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아우슈비츠 방문은 말 그대로 '역사적'이다. 그를 포함하여 역대 교황이 이곳을 찾은 것은 세 번째다. 그러나 그에 앞서 방문한 교황인 요한 바오로 2세는 폴란드인이었고, 베네딕토 16세는 독일인이었다. 유대인 대학살에 연고가 있었던 분들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개인적으로는 아무런 연고가 없는 이곳을 찾아 몸소 어둠의 역사를 빛으로 덮으며 화해의 메시지를 발신했다.
교황은 여러 시설과 고문 장소, 각종 전시 공간 등으로 개장된 역사박물관이기도 한 수용소를 둘러보고 몇몇 아우슈비츠 생존자들과도 만났다. 교황은 생존자 한 명, 한 명과 악수하며 몸을 숙여 그들의 양 볼에 입을 맞췄고, 이른바 죽음의 벽으로 이름 붙여진 곳에서 큰 백색 촛불을 밝히며 나치에 희생된 넋들을 기렸다. 그리고 지하 감금실로 향했다.
1941년 아우슈비츠 포로수용소에서 포로 한 명이 수용소를 탈출하자 소장은 포로들을 집합시켜 놓고 도망자를 체포하지 못했으니, 여러분 중에 열 명이 금식(禁食) 벙커에 수용되어 죽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 했다. 그들은 이제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다. 그 때 '오, 가련한 내 아내와 불쌍한 내 자식들!' 을 외치며 한 사내가 울부짖었다. 그러자 한 포로가 대열에서 이탈해 소장 앞에 나섰다. 소장은 재빨리 권총을 뽑아들었다.
"정지! 이 폴란드 놈이 왜 이래?"
그 포로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이 사람 대신 내가 죽겠소."
"당신은 누구요?"
"가톨릭교회 사제요."
잠시 동안 침묵이 흘렀다. 소장은 결정했다는 듯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좋다, 이들과 합류해라."
이렇게 해서 막시밀리언 콜베 신부는 1941년 8월 15일, 47세의 나이로 죽음을 맞이했다. 그는 사랑으로 이 세상을 정복하고자 했던 것이다.
교황은 막시밀리언 콜베 신부가 당시 갇혀 있었던 지하 감금시설에서 무릎을 꿇고 오랜 침묵으로 그의 숭고한 죽음을 애도하며 묵상하고 또 묵상했다.
고형규 기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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