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에 사는 한경희 할머니(81)는 젊은 시절 '엘리트 여성'으로 통했다. 일어(日語) 실력이 좋아 결혼 전부터 통역 일을 했고, 스물다섯 되던 해 요리사인 세 살 연상 남편과 결혼한 뒤에도 물류 회사에서 일어 통역을 하며 맞벌이를 했다. 남편과 모은 돈으로 서울 마포구에 너른 마당이 딸린 이층집(대지 100평·건평 70평)도 마련했다. "장식장에는 해외여행 기념품이랑 양주들이 그득했다"는 할머니는 전형적인 중산층이었다.
그런데 현재 할머니 부부는 기초연금(32만원)에다 남편이 경비원으로 일하며 버는 40만원으로 생활을 이어간다. ‘큰 인생 역경 없이 살아왔다’는 할머니의 살림이 점점 옹색해진 이유는 자식 뒷바라지였다. 2남 2녀를 키우며 결혼 자금을 보탰고 아들 둘 장가보낼 땐 신혼집도 마련해주며 뭉텅이 돈이 빠져나갔다. 이후에도 자녀들이 ‘사업한다’ ‘이사한다’할 때마다 돈을 지원해줬다. ‘결혼 자금 보탠 뒤에도 네 자녀에게 1억 원 이상씩은 골고루 나눠 줬다’는 게 한 할머니의 말이다. 그사이 할머니는 마포구 단독주택을 팔아 서울 외곽 전셋집으로 옮겼고, 지금은 충북 소도시의 10여 평짜리 작은 전셋집으로 다시 이사했다. 가세가 기울어지니 자식들도 찾아오지 않는다고 했다.
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김홍이(69) 할머니는 매일 손수레를 끌고 마을을 돈다. 지난달 찾은 김 할머니 집 앞에는 부탄가스통, 소주병, 신문 뭉치가 한가득 쌓여 있었다. "이것 다 가져가 봐야 많이 주면 3,000원 정도 받지." 1980년대부터 남편과 함께 식료품 가게를 운영하며 "넉넉하진 않아도 세끼 밥걱정은 안 하고 살았다"는 김 할머니는 모아논 돈도 없는 상태에서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살림이 크게 어려워졌다.
전문가들은 '특히 현재 65세 이상 여성 중에는 근로 활동기에 일했던 사람들이 많지가 않다'며 '남편과 헤어지면서 경제적으로 곤궁해지는 경우가 많은 편'이라고 했다. 최근 늘어가는 황혼 이혼도 중산층 재정 상황을 악화시킨다. 둘이 살다가 홀로 각자 살게 되면 고정비(수도·전기 요금 등) 요소 때문에 생활비가 2인 가구일 때의 절반이 아닌 70%가량 소요되기 때문에 중산층이라도 노후 대비 자금이 부족하면 어려움이 가중된다.
김성모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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