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집단 중심으로 돌아가던 사회를 지탱해 주던 ‘평생 직장’ 개념이 사라지면서 이제 우리에게 중요한 건 바로 자신의 행복이 되었다. 성장주의 신화는 깨지고 막연한 미래의 성공에 대한 기대도 사라지고, 대신 그 자리를 현재의 확실한 행복이 차지했다. ‘소확행’을 추구하는 개인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 합리적인 개인들은 일이 중심이었던 집단주의적 세계에서 벗어나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한다.
부캐는 게임에서 유래한 말로 주력해서 키우는 ‘본캐릭터(본캐)’가 아닌 새롭게 만든, 또 다른 캐릭터를 뜻하는 ‘부캐릭터’를 줄인 말이다. 흥미로운 건 취미를 통해 자신의 부캐를 발견하게 된 이들 중에는 그것이 본캐가 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취미로 시작한 필라테스나 디자인, 스쿠버다이빙 같은 활동이 전문가 자격까지 딴 뒤 퇴근 후 강사로 활동하며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어주는 부업이 되기도 한다. 지금까지 한 가지 영역만을 ‘천직’이라 여기며 살았던 우리는 의외로 좋아하는 취미의 세계 속에서 그것이 또 다른 직업이 될 수 있다는 걸 발견했다. 유튜브 같은 디지털 공간은 부캐 활동을 폭발적으로 성장시켰다. 전문적인 직업을 갖고 있는 이들이 1인 크리에이터라로 활동하며 부캐로 자신의 활동영역을 확장시키고 있다.
올해 부캐의 세계를 다룬 콘텐츠들이 큰 인기를 끌고, 그것이 실제 삶의 변화로까지 이어진 건 그간 집단에 의해 억압되었던 개인들이 자신의 또 다른 면모를 찾고 드러내고픈 욕망 때문이었다. 그들은 다양한 가면을 쓰고 등장해 그것이 또 다른 자신이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명함 한 장으로 단순화되던 삶만이 전부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본캐의 틀에 갇혀 있던 우리 사회에 다양한 부캐의 세계가 열리고 있다는 것은 우리 삶의 가치관이 바뀌고 있다는 뜻이다.
정덕현 문화 평론가, 시사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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