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답사일시:2024년 7월 3일
0 ‘태백산맥’은 소설가 조정래가 지은 대하 역사소설이다. 1945년 해방 이후 한국전쟁까지 치열했던 이념 대립과 민중들의 한을 묘사하여 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대부분의 사건이 벌교에서 벌어진다.
‘태백산맥’은 1983년 9월부터 월간지 현대문학에 연재되기 시작해 6년 만인 1989년에 마무리 되었다. 1986년 제1부 3권, 1987년 제2부 2권, 1988년 제3부 2권, 1989년 제4부 3권이 한길사에서 출간되었다. 원고지 분량은 15,700매이다.
조정래 작가는 1943년 순천시 승주읍 선암사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결혼을 하는 대처승이었다. 1947년 선암사의 부주지인 아버지가 사답(寺畓)을 소작인들에게 나눠준 일로 주지와 갈등이 생기자 그의 가족은 순천으로 이사했다.
소작인들의 가난과 고통을 헤아리고 그들을 배려한 아버지의 행동은 1948년 10월에 일어난 여순사건 뒤 고초를 겪는 빌미가 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우익 단체인 서북청년단 단원들에게 몰매를 맞고 피를 흘리며 끌려가고, 다음날 가족들은 재판소 앞마당으로 끌려나와 모진 수모를 당했다.
1949년 조정래는 순천남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이듬해인 1950년 초, 폐인이 되다시피 한 아버지가 풀려나자 그의 가족은 논산으로 이주했다. 1953년 휴전 협정이 체결된 뒤 아버지의 형제가 살고 있던 벌교로 이사했다. 교원자격증이 있던 아버지가 벌교상고의 교단에 서게 되었지만 딸린 식구가 많아서 집안 형편이 어려웠다.
어린 조정래는 벌교의 동네 사랑방에서 펼쳐지는 어른들의 이야기에 빠져 들며 마음의 평안을 찾아 앓고 있던 야뇨증이 치료되었다. 작가는 벌교(초등 4~6학년)에서 지낸 시절이 뒷날 제일 그립고 행복한 때로 기억된다고 말했다. 조정래는 이렇게 순천 · 논산 · 벌교 등지를 떠돌며 자랐다.
1956년 아버지가 광주일고로 전근하게 되자 광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1959년 아버지가 다시 서울 보성고등학교로 가게 되어 조정래는 광주서중을 거쳐 보성고교에 진학했다. 농촌 사회활동에 뜻이 있어 3학년 2학기가 되어서야 이과에서 문과로 진학 목표를 바꾸고 입시 준비에 전념, 동국대학교 국문학과에 들어갔다.
〈태백산맥〉은 베스트셀러인 동시에 문학적 성취를 이룬 작품이다. 힘 있는 문체에 사건 전개가 흥미롭게 진행되어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유형의 땅〉으로 1981년 현대문학상을, 〈인간의 문〉으로 1982년 대한민국문학상을 받았고 1984년 〈메아리 메아리〉로 소설문학작품상을 받았고 1988년 〈태백산맥〉으로 성옥문화상, 동국문학상, 단재문학상을 받았다.
현부자네 집
소화의 집
벌교읍 중심지
남도여관
남도여관 입장료
1층은 지금도 객실로 사용중이다.
2층 다다미방(전시공간)
어렸을 때 사용했던 물건도 있다.
술도가
벌교금융조합
벌교금융조합 관람은 무료이다.
금고 출입문
벌교금융조합 길 건너에 '모리씨 빵가게' 가 있다. 오후 2시인데 만든 빵이 전부 다 팔려서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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