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산행사진-섬여행

통영 한산도 이충무공 유적지 탐방

by 두승 2025. 4. 6.

0 탐방일시:202544

0 한산도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곳이다. 1963121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113호로 지정되었으며, 2011년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제승당 선착장에서 바라본 바다 풍경
유람선 선착장도 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1545년 한성 건천동에서 태어났다. 157632세에 과거시험의 무과에 급제하여 무관직을 수행하였다. 훈련원봉사, 발포수군만호, 훈련원참군 등을 거쳐 158945세에 정읍현감으로 재직했으며 1591년에는 전라좌수사에 임명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장군은 한산대첩을 통해 바다의 제해권을 구축한 후 '제승당'을 짓고 전라좌수사겸 삼도수군통제사로 머물렀다. 원균의 모함으로 파직당한 뒤 삼도수군통제사를 물려받은 원균의 참패로 이곳이 전부 소실되었는데 그 후에 재건되었다.

 

'제승당'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삼도 수군을 지휘하던 곳이다. 내부에는 해전도와 현자총통, 지자총통, 작은 거북선의 모형 등이 전시되어 있다.

 

제승당 '수루'는 이순신 장군이 왜적의 동태를 파악하기 위해서 자주 찾았던 망루이다. 이 수루에 올라 왜적을 물리치고, 나라를 구할 수 있기를 염원하며 나랏일을 거정하는 시를 읊기도 하였다.

 

한산도가

 

'수루(戍樓)'에 서보니 풍전등화 같던 나라를 생각하며, 괴로워하던 장군의 고뇌가 느껴진다. 요즈음 우리 나라는 대통령때문에  정세가 불안하고 가슴이 답답한데, 오늘 드디어 이곳에서 파면 소식을 들었다.

 

이순장군의 영정을 모신 '충무사'

 

한산정은 이순신 장군이 활을 쏘던 곳이며 표적 까지는 145m이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 활동 일지)

<1592>

327-거북선에서 화포, 지자총통, 현자총통으로 사격 연습함

413-임진왜란이 일어남

54-전라 좌수사 1차 출동으로 옥포와 합포 적진포에서 승리함

529-전라 좌수사 2차 출동하여 거북선을 실전에서 처음으로 사용함. 당포, 당항포, 율포에서 전투함

76-전라 좌수사 3차 출동으로 한산도, 안골포에서 승리함

824-전라 좌수사 4차 출동으로 장림포, 다대포, 부산포에서 전투

 

<1593>

26-전라 좌수사 5차 출동으로 웅포에서 전투

52-웅포에서 2번째 승리를 거두고 한산도 두을포로 진을 옮김

81-전라좌수사 겸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됨

 

<1594>

927-삼도수군통제사 6번째 출동으로 당항포, 장문포에서 승리

 

<1597>

26-원균의 모함으로 선조가 이순신의 파직을 명함

34-감옥에 갇힘

41-옥중 생활을 마치고 나옴

42-류성룡을 만난 후, 권율 휘하에서 백의종군을 지시 받음

716-원균이 이끄는 조선함대가 칠천량에서 일본수군의 기습을 받아 처참하게 패함

723-이조 판서 이항복의 건의로 종2품 삼도수군통제사에 복직함

815-조정에서 수군을 폐지하려는 움직임이 일자 신에게는 아직 배 12척이 남아있나이다라는 장계를 올리며 수군의 폐지를 반대함

829-진도 벽파진으로 진을 옮김

916-명량해협에서 배 13척으로 적선 133척과 맞서 승리함

1014-셋째 아들 이면의 전사 소식을 들음

1029-목포 고하도로 진을 옮김

 

<1598>

217-완도군의 고금도로 이진하여, 새로운 통제영으로 삼음

719-고흥 거금도 절이도해전에서 적선 50여척 격침

920-명군과 합류해 완도군 장도에서 승리를 거둠

107-명군과 합류해 순천왜성에서 전투를 했으나 성을 함락시키지 못함

1119-광양만 서쪽의 순천왜성에 포위된 왜군을 돕기 위해서 사천에서 쳐들어 오는 적선을 광양만 동쪽에서 요격하던 중 관음포에 갇힌 적을 섬멸하려다 총탄에 맞아 전사함

 

 

통영으로 나가는 배가 들어온다.

 

한산도 망산

 

배에서 바라본 제승당 '수루'

 

통영의 '미륵산'

 

인터넷에 엉터리 정보가 많은데 이것이 정확한 한산농협 카페리 운항시간표이다. 거제에서 추봉도로 들어오는 배가 있고 제승당으로는 이 카페리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