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명상방

그릇된 사랑

by 두승 2015. 11. 14.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야 탓할 수 없지만, 문제는 어긋난 사랑이다. 어긋난 사랑은 기쁨을 쓸쓸함으로 뒤덮는다. 나는 사랑하고자 하나, 상대가 응답하지 않을 때 어긋난 사랑이다. 때로 사랑이 어긋나는 이유는 그릇된 사랑 때문이다. 본인은 사랑한다고 하지만, 상대방이 원하는 방식으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전히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는 ‘그릇된 사랑’ 때문에 빚어진 안타까운 상처다. 박근혜 대통령은 아버지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쿠데타’ 라는 말만 들어도 경기를 하는 모양이다. 조국 근대화 과정에서 다소 무리를 했다고 ‘군사독재정권’ 으로 지목하는 역사교과서가 못마땅했을 것이다. 민주사회의 명백한 역사적 판단을 호적에서 이름 고치듯이, 뒤바꿔 놓는다고 걸어 온 흔적이 사라지지 않는 법인데, 그래서 안타까운 사랑이다.


  대통령이 정작 아버지를 제대로 사랑하는 방법은 아버지의 죄과를 아버지에게서 상처받은 이들에게 충분히 보속하는 일이다. “딸인 제가 아버지 대신 사과드린다. 용서해 달라”고 사과하고, 다시는 죄 짓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일이다.


  오히려 아버지를 우상처럼 신봉하는 자들과 더불어, 아버지를 반대하는 자들을 ‘비국민’ 으로 몰아가는 태도는 아버지를 빠져나올 수 없는 미궁에 깊숙이 집어넣는 일이다. 그런 사랑은 쓸쓸하다.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는 것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집회가 열리면, 항상 그 주변에는 국정화를 찬성하는 몇몇 사람들이 피켓을 들고 서 있다. 대부분 군복을 입은 ‘칙칙한’ 노인들이다. 군에서 제대한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군복을 벗지 못하는 노인들은 그래서 안쓰럽다. 그 안쓰러운 노인들의 지지를 받으며 이미 떨어진 가지를 나무에 붙여 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박근혜 대통령의 처신은 가련하다. 그녀는 어쩌면 이미 오래전에 노인들의 나라에 들어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한상봉(이시도로) : '가톨릭뉴스지금여기' 주필>




'명상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람이 죽을 때 후회하는 것   (0) 2016.02.06
IS 없애도 또 다른 괴물 나온다   (0) 2015.11.17
모두가 행복한 나라 덴마크  (0) 2015.11.04
공정한 사회  (0) 2015.10.15
공부를 못해도 성공할 수 있는 이유  (0) 2015.0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