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3일, 프랑스 파리에서 벌어진 테러로 인류는 새로운 형태의 위험에 직면했다. 테러리스트들은 과거와 달리 중동 분쟁지역에 머물지 않는다. 유럽의 첨단 미디어로 소통하면서 국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이슬람국가(IS)라는 작은 테러 조직이 어떻게 인류를 위협하는 괴물로 급성장했는지를 분석해 국제사회의 새로운 테러 대응 전략이 모색돼야 한다.
시리아 내전 5년 동안 미국과 유럽연합 등은 독재자 알아사드 정권을 붕괴시키기 위해 시리아 반군을 지원해 왔다. 반면 러시아는 시리아를 내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알아사드 정권을 지원해 국제사회가 시리아 대응에서 분열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 와중에 극단적 이슬람 원리주의로 무장한 IS는 석유 밀매, 인질·납치 등으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테러 조직이 됐다.
이슬람인들은 서구의 이중 잣대에 분노하고 좌절한다. IS의 요르단 조종사 화형에 온갖 비난을 쏟아내면서,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숨진 세 살짜리 팔레스타인 소녀의 죽음은 아예 외면하려 한다. 또 지난 10여 년간 미국의 이라크전쟁 이후 22만 명 이상의 민간인이 희생당했으나 서구 언론에 이런 뉴스는 잘 실리지 않았다. 가족의 부당한 죽음에는 반드시 복수하고자 하는 아랍 부족의 전통때문에 수백만 명의 극단적 증오 세력이 생겨난 사실을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IS가 막강한 자금과 조직으로 국제사회를 떨게 하지만 실체를 들여다보면 의외로 허약하다. 이슬람 세계에서 IS의 지지율은 1%를 밑돈다. 주류 무슬림 등 국제사회는 IS의 반인륜적 범죄에 치를 떤다. 문제는 미국·프랑스 등 연합군이 공습으로 IS의 근거지를 파괴하고 있지만 IS는 사라지지 않는다. IS가 약해지면 이를 대신할 다른 괴물 테러조직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날 뿐이다. 미국이 테러 전쟁의 핵심 전력으로 활용하는 드론은 1명의 테러리스트를 사살하기 위해 평균 8~9명의 민간인을 희생시키고 있다. 드론으로 희생된 무슬림의 유족들이 미국을 증오하며 성전주의자가 되는 악순환을 막으려면 미국과 서방은 대테러 전쟁 방식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테러 분자를 궤멸하려는 노력보다는 극단적인 테러 분자들이 나오지않게 환경을 조성하고, 극심한 사회적 차별을 완화시키는 전략이 필요하다. 서방이 이라크와 시리아의 조속한 정치적 안정과 대폭적인 민생 경제 지원, 전쟁 피해자들에 대한 심리 치유 프로그램 제공, 전쟁고아들에 대한 교육 기회와 취업 알선 같은 노력이 따르지 않는다면 죽음의 대열로 달려드는 테러 세력을 꺾지 못할 것이다. 이들 방안은 무력을 사용하는 대책에 비해 단기적으로 가시적 성과를 낼 수는 없겠지만 이슬람 사회를 점진적으로 변화시켜 서구와 조화로운 사회를 만들어가는 기틀이 될 수는 있다.
<이희수 한양대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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