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중년 남성들이 매일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면서 열심히 일하는 이유는 ‘가족들을 위해서’ 라고 한다. 하지만 정작 자녀와 부인은 가장이 집에 같이 있으면 불편하다고 여긴다. 어느 아버지가 부인과 자녀에게 그리운 대상이고, 인정받으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지금의 중년 남성들은 가족과 따뜻한 관계를 맺지 못하고 소외되고 겉도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자신이 어렸을 때 아버지와 따뜻한 관계를 맺어본 경험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예전의 남자 어른들은 가정에서 근엄하고 반듯한 자세로 생활했다. 당연히 어린 자녀와 친구와 같은 모습으로 정답게 지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자녀를 그렇게 키우면 ‘버릇만 나빠진다’ 고 생각했다.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것을 아버지가 되었다고 자연스럽게 자녀에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지금의 중년 아버지들은 베이비붐 세대이다. 이들은 극심한 생존경쟁 속에서 ‘살아남는 것’ 만이 최고의 가치인 삶을 살아왔다. 그리고 가장의 역할은 직장에서 살아남아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이들에게는 가족과 정서적 관계를 잘 맺는 것은 오히려 사치스러운 일이었다. 가족 간의 친밀한 정서적 관계를 담당하는 것은 부인의 몫이었다. 그리고 자신은 경제적인 면만 책임지면 가장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쫓기면서 앞만 보고 살아와서 어느덧 중년의 고개에 다다라 주위를 바라보니 세상은 너무나 달라져 있었다. 가족의 마음은 뿔뿔이 흩어져 있고 어느덧 자신에게서 멀어져 있었다. 이제는 가족과 살갑게 정서적인 교류를 할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생겼지만 주위에 아무도 없다. 문득 ‘내가 이러려고 그렇게 고생하며 열심히 살았나?' 하는 자괴감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사람은 밥만 먹고 살 수는 없다. 사람은 따스한 인간관계에서 나오는 ‘정’ 을 먹고 사는 존재인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이제는 자녀나 부인과 서로 마음을 주고받는 관계를 맺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여자들이나 아이들만 관심을 가져도 된다고 무시했던 일상의 사소한 일들에 대한 느낌을 서로 나눌 줄 알아야 한다. 따스한 인간관계는 ‘세계 평화’ 나 ‘정치 경제’ 와 같은 큰 주제를 나눌 때 생기는 것이 아니다. 집안일을 할 때도 서로 협력해서 같이 하고,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느꼈던 사소한 감정들을 나누고 소통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특히 남자들은 틈만 나면 훈계하고 지시하려는 경향이 강한데 이러한 습관도 버리고 상대방의 말을 차분히 들어주고 격려하며 공감하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
한성열 심리학 교수, 주간 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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