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여름에 산길을 걷다 보면 도토리 몇 개 달린 참나무 잔가지들이 예리한 도구로 절단된 듯 땅바닥에 떨어져 있다. 이러한 장면을 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람쥐나 청설모가 범인이라고 생각한다. 다람쥐와 청설모는 도토리를 먹기는 하지만 참나무 가지를 자르는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
참나무 가지를 자른 범인은 '도토리거위벌레'다. 도토리거위벌레는 크기가 1㎝ 안팎인 작은 곤충으로 도토리가 달린 참나무의 잔가지를 잘라 바닥에 떨어뜨린다. 도토리에 구멍을 뚫어 알을 낳고 일주일 정도 지나면 알에서 깨어나 유충으로 부화해 과육을 먹고 생활한다. 20여일 뒤 도토리 껍질을 뚫고 나와 땅속에 흙집을 지어 겨울을 나고 이듬해 5월 하순께 번데기가 되어 성충으로 우화된다. 성충이 된 도토리거위벌레는 참나무에 기어올라 다시 알을 낳고 가지를 잘라 떨어뜨린다.
암컷이 알을 낳고 가지를 자르는 동안 짝짓기를 한 도토리거위벌레 수컷은 자신의 유전자를 지키려고 주변 경계를 선다. 도토리거위벌레 수컷은 가지 자르는 것을 도와주지 않고 오로지 경계 서는 일만 한다. 다른 수컷이 나타나면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이 시작된다. 결국은 더 힘센 수컷 도토리거위벌레가 암컷을 차지하게 되고 다시 짝짓기를 시작한다.
3시간 정도 작업 끝에 잘린 가지는 바람을 타듯 천천히 떨어진다. 날개처럼 잎을 2∼3장 달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도토리거위벌레가 알을 낳은 도토리만 땅에 떨어뜨리지 않고 몇 장의 잎과 함께 떨어뜨리는 이유는 넓은 잎이 공기에 저항을 주어 천천히 떨어져 도토리 안에 들어있는 알이 밖으로 튕겨 나오는 것을 막고 도토리가 빨리 마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지혜로움이 스며있다.
양형호, 국립수목원연구원
'명상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교황 "전쟁은 절대 안 된다" (0) | 2018.01.02 |
---|---|
부끄러운 보수의 몰락 (0) | 2017.12.12 |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교육 (0) | 2017.07.05 |
칭찬은 독인가, 약인가? (0) | 2017.06.28 |
80세 딸이 100세 엄마 부양 (0) | 2017.04.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