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여행일시:2019년 7월 14일
0 아우내 독립운동사적지(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병천리 산 73-2)는 3·1운동 당시 아우내 장터로 류관순 열사가 만세를 불렀던 곳이다.
1919년 4월 1일 아침 아우내장터에는 전날 밤 매봉산에서 타오른 횃불을 보고 장꾼을 가장한 군중 3,000여명이 모여들었다. 군중은 점점 불어나 오후 1시가 넘어가면서 6,000명을 넘어섰다. 김구응 의사는 두루마리로 된 독립선언문을 펴 낭독했고 류관순 열사는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했다.
만세운동은 극히 평화적이었다. 군중이 점점 늘어나고 만세 소리는 천지를 진동할 정도로 커졌다. 오후 2시쯤 천안헌병분대에서 헌병들이 트럭을 타고 도착했다. 헌병들은 군중을 향해 총을 쏘고 칼을 휘둘렀다. 아우내장터 시위로 19명이 죽고 30명 이상이 크게 다쳤다.
병천시가지가 내려다보이는 구미산에 기미독립운동 기념비를 세웠다. 4각의 기단석 위에 단계를 만들고 위로 올라갈수록 좁혀 가다가 오석(烏石)으로 받침을 만들었다.
병천은 순대가 유명한 곳이어서 점심 때 순대국을 먹었는데 역시 맛이 있었다.
점심을 먹고 매봉산의 류관순 열사 유적지로 향했다.
류관순 열사 유적지(병천면 탑원리 252)는 1969년부터 1973년 사이에 연차적으로 보수·정비하였다. 추모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목조 기와집이며 안에는 월전 장우성이 그린 100호짜리 류열사의 입상이 모셔져 있다. 그 앞에는 열사의 동상이 있으며 추모각의 서북쪽에는 초혼묘(招魂墓)가 있다. 매봉산 정상에는 거사를 알리고자 봉화를 올린 봉화탑, 산자락에는 류관순 열사 생가지가 있다.
류관순 열사 동상
류관순 열사는 1902년 병천면 용두리에서 태어나 이화학당에 재학 중 3.1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자 귀향하여 1919년 4월 1일, 아우내 만세운동에 적극 참여한 죄로 공주 감옥에 수감되었다. 1919년 8월, 서대문 형무소로 이감된 뒤 일제의 악독한 고문에 못이겨 1920년 9월 28일 옥사하였다.
추모각
초혼묘인데 아우내 독립운동사적지에서 보았던 청년이 엎드려 절하고 있다.
류관순 열사 봉화지
柳寬順은 고흥 류씨로, 2007년 8월부터 시행된 대법원의 호적예규에 따라 문중에서 한글로 표기할 때 '류'자로 쓰기로 했기 때문에 유관순이 아니라 류관순이라고 써야 한다. 그런데 류관순 기념사업회에서는 행정상 불편을 이유로 수정하지 않고 있다.
0 탐방일정:목천면 독립기념관에서 400번 시내버스를 타고 병천우체국에서 내려 아우내 31운동 독립사적지를 둘러보고 아우내장터로 이동하여 점심을 먹고 걸어서 유관순 열사유적지로 간 뒤 탐방을 마치고 유적지 입구에서 다시 400번 버스를 타고 천안역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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