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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방

'서울법대 공화국'의 파탄

by 두승 2019. 9. 14.


 엘리트(elite)에 대립되는 말은 대중(mass)이다. 스파르타의 엘리트 정치를 이상적 모델로 제시한 소크라테스, 그의 제자이면서 철인정치를 주장한 플라톤, 그의 제자이면서 민주주의를 열등한 정체로 여긴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엘리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알렉산더왕의 스승이니 그들은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학벌의 최대 수혜자이기도 했다. 조국 법무장관 후보를 둘러싼 난무한 드라마의 출연진은 어떤 이들이었나?  가장 큰 공통분모는 ‘서울법대 출신’이라는 점이다. 국회 청문위원 18명 중 여상규 위원장을 포함한 7명이 서울법대 출신이다. 조국 후보도 그렇고, 나경원 원내대표와 함께 후보 사퇴를 요구한 원희룡 제주지사는 법대 동기다. 윤석열 검찰총장도 동문이다. 범위를 넓혀보면 ‘국정농단’이나 ‘사법농단’ 혐의로 수감되거나 재판 중인 자 중에도 김기춘, 우병우, 양승태 등 서울법대 출신이 너무 많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수모를 주려고 기획한 ‘논두렁 시계’로 거명되는 이인규 전 중수부장도 동문이다.



 서울법대 출신 상당수에서 발견되는 공통점은 무엇인가? 첫째, 초·중·고에서 대부분 일등을 놓친 적이 없을 만큼 머리가 좋고 성취욕구가 강하다. 이런 이력은 지고는 못 배기는 경쟁지상주의와 자기가 주역이 되지 않으면 친구도 끌어내리는 자기중심주의를 키우는 토양이다. 나경원과 원희룡이 조국에게 퍼부은 독한 말들은 여느 대학 동기 간에는 나오기 힘든 것이다. 둘째, 선민의식에 빠져 남의 고통에 무관심하거나 공감능력이 떨어진다. 태극기 집회에서 세월호 유가족의 상처를 후비는 말을 한 김진태 의원 같은 이들이 많은 이유다. 셋째, 학교 공부가 다라고 생각한다. 대학시절 서울법대에 다니는 친구 하숙집을 방문했다가 고시과목 말고는 책이 전혀 없어 “왜 이렇게 책이 없냐”고 물은 적이 있다. “다른 책은 사시의 방해물일 뿐”이라는 그의 대답에 “죄짓지 말아야지, 너한테 재판받을까 겁난다”고 대꾸했다. 예전에는 인문학자인 목민관이 재판장이 되고 법전문가는 형방의 지위에 머물렀지만, 이젠 법전문가가 법조는 물론 정치까지 장악했다.



 민주주의 요람인 영국도 명문 학교 출신이 요직을 과점하면서 브렉시트라는 엘리트 정치의 파탄을 겪고 있다. 예전에는 중졸인 캘러헌과 고중퇴 학력의 메이저 총리도 나왔으나, 이젠 이튼과 옥스퍼드 출신인 캐머런, 메이, 존슨으로 이어지며 극우 총리까지 등장했다. 불평등에 분노한 노란조끼 시위로 몸살을 앓는 프랑스에서는 엘리트 정치인의 산실인 국립행정학교(ENA) 폐지론이 대두했는데, 제안자가 그 학교를 나온 마크롱 대통령이다. 우리도 국공립대학 통합 등 획기적인 교육체제 개편이 절실한 시점이다. 대중의 각성도 중요하다. 선거할 때도 사회를 위해 살아온 이력이 아닌 학벌이 선택 기준이 돼서는 안된다. 엘리트 정치인들이 개혁은 커녕 기득권체제 유지에 급급하는 모습과 검찰이 정치영역까지 넘나드는 검찰공화국의 진상을 전 국민이 봤다. 그들의 저항을 뚫고 이번에는 검찰개혁에 성공하는지 두고 볼 일이다. 

  이봉수 세명대 교수,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