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왜 불행한가? 서로간의 증오와 불신 때문이다. 따라서 해결책은 ‘사랑과 용서’라고 말하면 그럴듯해 보이지만 문제해결이 그렇게 쉽지는 않다. 그리 단순하다면 인류는 진즉 행복해졌을 것이고 행복을 더 이상 갈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세상이 이토록 시끄러운 것을 보면 그것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왜 인간이 행복해야 한다고 믿는 건가? 그렇다! 인간은 행복을 원하는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행복보다 에너지를 원한다.
인간이 원하는 것은 역동성이다. 인간은 활력을 원하고 에너지를 원한다. 에너지는 집단으로부터 공급된다. 침팬지는 때로 100여 마리가 대집단을 이루고 수컷 중심으로 상대방의 머리를 부수며 사납게 전투를 벌인다. 그런데 피그미침팬지라고도 불렸던 보노보는 평화롭게 산다. 보노보는 공격적인 침팬지와 달리 사납지 않다. 모계사회를 이루고 있으며 문제가 발생하면 스킨십으로 해결한다. 인간은 가족단위로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는 보노보와 집단의 활력을 추구하는 침팬지의 특성을 동시에 가졌다. 물론 오랑우탄처럼 혼자 잘 노는 경우도 있다. 대체로 현대인은 대집단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한 편이다. 그곳에 무엇이 있는가? 권력이 있다. 오랑우탄에게 없고 보노보에게도 없으나 침팬지에게 있는 권력지향이 인간에게 있다.
인간은 침팬지의 활력과 보노보의 행복을 동시에 추구한다. 그런데 침팬지가 먼저다. 우리 인간 사회에서도 보수적인 사고방식에 젖어있는 사람들은 특히 그렇다. 그들은 대집단이 주는 에너지를 먼저 취하고 소집단의 행복을 나중에 꾀한다. 약자를 배려하고 존중하려는 마음 가짐은 찾기가 힘들다. 그리고 인간이 원하는 것은 긴장과 이완이다. 긴장은 에너지를 주고 이완은 행복을 준다. 긴장은 대규모의 집단에 소속되는 데서 얻고 행복은 소규모의 가족과 긴밀하게 상호작용 하는 데서 얻는다. 그 사이에 무엇이 있는가? 권력이 있다. 인간은 타자와의 대칭을 이룸으로써 집단의 권력을 도출한다. 여당과 야당, 남자와 여자, 남한과 북한, 서구와 동양의 대칭은 집단을 긴장시키고 권력을 형성시킨다. 돈도 명성도 지위도 평판도 세력도 권력에 다가서는 수단일 뿐이다. 권력의 중심에 다가설 수만 있다면 인간은 미친 짓도 마다하지 않는다.
진정한 행복을 원한다면 인간의 이러한 본성을 받아들여야 한다. 수컷이 지배하는 침팬지의 세계와 암컷이 지배하는 보노보의 세계는 인간의 양면성이다. 문제는 대칭과 호응의 교통정리에 실패할 때이다. 가까운 가족과 대칭을 세워 긴장을 조성하려는 사람이 있다. 형제를 치고 친구를 괴롭히고 가족에게 폭력을 행사하여 긴장을 얻어내려 한다. 지역주의와 성차별로 긴장을 조성하는 사람들도 있다. 심하면 자해를 한다. 자기파괴를 통해 긴장을 얻으려고 한다. 그래서 인간은 불행해진다. 긴장은 가까운 곳에 있는 가족이나 나라가 아니고 멀리 있는 대집단에서 얻어야 한다. 현실 세계의 사소한 것에 얽매이지 말고 독서를 통해 인류 문명과 역사차원의 대립을 통찰하며 에너지를 얻어야 한다. 그래도 부족하다면 긴장감 넘치는 스포츠나 레저 활동을 즐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인터넷 논객, 김동렬씨의 글을 참고하여 편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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