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의 작은 산골마을에 제주 고씨네 일가가 집성촌을 이루고 옹기종기 모여살고 있다. 고영준씨 집안에 셋째 며느리로 시집 온 지민정(50)씨는 시아버지에게 막내딸로 여겨질 만큼 귀하고 살가운 며느리였다. 밝고 활발한 성격에 누구든지 만나면 내 사람으로 만들고, 지혜롭고 똑똑해서 남편과 하고 있던 청국장 사업도 확장해가고 있던 어느 날, 예기치 못한 사고가 터졌다. 남편 고상흠 씨와 차를 타고 가던 중에 4중 추돌이라는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조수석에 타고 있던 민정 씨는 천운으로 외상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만신창이가 된 사람들과 함께 병원으로 이송될 때까지 사고의 충격으로 다섯 시간 내내 울음을 멈추지 못했던 민정 씨에게 더 큰 시련이 찾아왔다. 40여 년 넘는 반생의 기억을 고스란히 잃어버린 것. 그녀가 병원에서 눈을 떴을 때 마주한 세상은, 온통 낯설고 두려운 풍경들뿐이었다.
병명은 사고의 충격으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성 장애인 '해리성 기억상실증' 이다. 민정 씨는 남편과 가족도 알아보지 못했다. 부부의 일상은 사는 게 너무 힘들었다. 겉은 멀쩡한데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겼다고 동네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까봐, 부부는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일가친척들한테도 민정 씨의 상태를 사실대로 알리지 못했다. 그저 아직 치료 중이라고만 알고 있을 정도였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환경이 낯설고, 마주치는 사람들이 두렵기만 한 민정 씨는 매사 긴장을 하며 생활한다. 겉으로 평온해 보여도 신경은 언제나 날카롭게 곤두서있다. 지인 몇몇을 빼놓고 누군가 찾아오거나 만나기라도 하면 외면하고 상흠 씨 등 뒤로 숨기 바쁜 민정 씨. 감정 조절이 힘들어 애꿎은 남편에게 비수 같은 원망의 말들을 쏟아내고, 집안의 물건을 집어 던지기도 했던 전쟁 같은 날들이 지속되었다.
세상에 대한 원망과 두려움으로 가득 찼던 민정 씨가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몇 달 전부터 마음을 다독이며 다시 세상 밖으로 손을 내밀 용기를 내기 시작한 것! 남편 상흠 씨의 헌신이 없었다면 결코 불가능했을 일이다. 사고 후 세 살 어린아이가 되어버린 아내 민정 씨에게 상흠 씬 의미를 모르는 단어의 뜻이나 발음 등을 알려주고, 옷 입는 법이나 요리하는 법 등 생활인으로 살아야 할 사소한 것 하나하나를 가르쳐주었다. 늘 부족한 선생님 탓을 하며 투덜대는 민정씨지만, 상흠 씨의 노력으로 다시 새 삶을 힘껏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사고나 질병으로 사람이 건강을 잃는 것은 한 순간이지만 원상태로 돌아가려면 괘도를 이탈한 별이 정상괘도에 다시 진입하는 것 만큼이나 힘든 일이다. 최선을 다해서 노력해야 되고, 인내와 끈기가 필요하고, 운도 따라줘야 원상 회복을 할 수 있다. 지민정씨는 2012년 7월에 사고를 당했고 2014년 6월 KBS1 <인간극장>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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