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고흥 소록도에서 한센병 환자를 보살펴 온 외국인 수녀 2명이 편지 한 장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소록도 주민들은 이별의 슬픔을 감추지 못한 채 일손을 놓고 성당에서 열흘 넘게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소록도에서 평생을 환자와 함께 살아온 마리안(71), 마가레트(70) 수녀가 고국인 오스트리아로 떠난 것입니다. 마리안 수녀는 1962년에, 마가레트 수녀는 1966년에 소록도에 첫발을 디뎠습니다.
오스트리아 간호학교를 나온 두 수녀는 소록도병원이 간호사를 원한다는 소식이 소속 수녀회에 전해지자 차례로 소록도에 왔습니다.'처음 갔을 때 환자가 6,000명이었어요. 아이들도 200명쯤 되었고, 약도 없고 돌봐줄 사람도 없었습니다.‘한 사람 한 사람 치료해 주면서 평생 이곳에서 살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환자들이 말리는데도 약을 꼼꼼히 발라야 한다며 장갑도 끼지 않고 상처를 만졌습니다. 오후엔 죽도 쑤고, 과자도 구워 들고, 마을을 돌았습니다. 사람들은 전라도 사투리에 한글까지 깨친 두 수녀를‘할매’라고 불렀습니다. 꽃다운 20대는 수천 환자의 손과 발로 살아가며 일흔 할머니가 됐습니다. 어루만지는 손과, 주님밖엔 누구에게도 얼굴을 알리지 않는 베풂이 참 베풂임을 믿었던 두 사람은 상이나 인터뷰를 번번이 물리쳤습니다. 10여년 전 오스트리아 정부가 주는 훈장은 주한 오스트리아 대사가 섬까지 찾아와서야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병원 측이 마련한 회갑잔치마저‘기도하러 간다.’며 피했습니다. 두 수녀는 본국 수녀회가 보내오는 생활비까지 환자들 우유와 간식비, 그리고 성한 몸이 돼 떠나는 사람들의 노자로 나눠줬습니다.
외로운 섬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을 반세기 가깝게 위로한 두 수녀님의 사랑의 향기는 민들레 씨앗처럼 바람에 날려 어두운 곳을 밝히고 추운 세상을 덥혀 주리라고 믿습니다. 누군가에게 알려질까봐, 요란한 송별식이 될까봐 두 분은 조용히 떠나갔습니다. 소록도를 떠나던 날, 멀어지는 섬과 사람들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두 수녀님의 귀향길엔... 소록도에 올 때 가져왔던 해진 가방 한개만 들려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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