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열린 ‘현대 전쟁의 기원’이라는 세미나에 참여한 적이 있다. 전쟁과 관련된 최신 연구들을 바탕으로 전쟁이 왜 일어났는가를 연구하는 세미나였다. 인간은 이성을 갖고 생각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전쟁이 있을 때마다 앞으로 더 이상 전쟁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거나 전쟁을 반대하는 사회적 여론과 시위가 나타나곤 했다.
베트남전쟁과 이라크전쟁이 그 대표적인 예이며, 한국 사람들 역시 전쟁을 통해서는 통일도, 평화도 얻을 수 없고 힘없는 약자들만 고통을 겪고, 전쟁후에도 힘들게 살아야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끔찍한 원자탄과 융단폭격을 경험한 일본인들과 독일인들 역시 그 고통을 잊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왜 시간이 지나면 인간은 또 전쟁을 하는가? 석학들의 결론은 하나였다. ‘인간은 바보’이며, ‘망각의 동물’이라는 것이다. 다시는 전쟁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다짐해놓고 그로부터 한 세대도 지나지 않아 인간은 다시 전쟁을 결정한다. 전쟁을 결정하는 지도자들이야 어차피 국민의 안위보다는 정치적 목적 달성이 우선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치자. 그런 지도자를 추대하고 그런 지도자의 전쟁 결정을 지지하는 사회적 여론은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한반도는 지금도 전쟁의 위기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통일은 대박’이라고 하지만, 통일을 논하기 이전에 63년간 전쟁 재발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던 불완전한 ‘정전체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체결된 정전협정에는 협정 종료 후 3개월 이내에 고위급회담을 개최해서 평화적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전협정에 규정된 ‘평화적 해결책’을 찾고자 노력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대신 물리적 방법을 통해서라도 통일을 해야 한다는 황당한 주장이 더 난무하고 있다. 망각은 인간을 끊임없이 여러 위험 앞에 노출시킨다. 전쟁으로 인한 고통과 피해에 대한 망각이 또 다른 전쟁을 불러온다. 이 땅에서 전쟁이 다시금 일어난다면 우리는 영원한 후진국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전쟁뿐만 아니라 세월호 참사나 가습기 살균제 사건처럼 인재에 대한 망각도 더 끔찍한 재앙을 불러온다.
박태균(서울대 교수),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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