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여행일시:2019년 3월 3일
0 전주는 역사가 유구한 고도(古都)이다. 견훤이 후백제를 건국하며 도읍으로 삼았고, 후대에는 태조가 조선을 건국하면서 본향인 전주가 왕조의 뿌리가 됐다. 조선 시대에는 전라감영이 있던 곳으로, 호남과 제주 일대의 중심지였다. 예향의 도시 전주를 찾는 사람이라면 꼭 둘러보고 가는 여행 코스는 단연 풍남동과 교동 일대에 위치한 한옥마을이다.
한옥마을과 서학동을 잇는 남천교 위에 세워진 청연루
중바위산
고즈넉한 한옥마을의 전주천변에는 1995년도에 세워진 강암 서예관이 있는데 이곳은 강암 송성용 선생(1913∼1999)이 사재로 세운 뒤 자신의 작품과 국내외 유명작가의 작품 등 1,162점을 전주시에 기부하여 시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입장료는 무료이다. 지하 1층~지상 2층 건물에 전시실, 세미나실, 수장고 등을 갖추었으며 조선시대 서화 대가들의 작품, 강암이 평생 간직해온 고서적과 서첩서필 등이 전시되어 있다.
강암선생의 작품은 호남을 비롯한 경향각지에 비문. 현판등 수천여점이 산재해 있다. 전주 호남제일문, 내장산내장사, 토함산석굴암, 두륜산대흥사, 불국사자하문, 불국사불국선원, 금산사보제루, 백양사화엄전, 화엄사적멸당, 금오산향일암 등에서 강암선생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전주한옥마을은 2010년 슬로시티로 지정되었다. 전주의 역사에 비하면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한옥마을에는 전주의 올곧은 정신이 담겨있다. 시간은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강점기 양곡을 수송하기 위해 전군가도가 개설됨에 따라 전주부성은 풍남문을 제외하고 자취를 잃었다. 그러면서 성 밖에 머물던 일본인이 성안으로 진출해 상권을 확장했다. 이에 반발한 전주 양반들이 풍남동과 교동에 조성한 한옥촌이 지금의 한옥마을이다. 오늘날 한옥 600여 채가 어깨를 맞대고 있어, 오목대에 올라 전경을 내려다보면 실로 장관이다.
오목대로 오르는 길
전주한옥마을 동쪽에 있는 오목대 (지방기념물 제16호)는 태조 이성계가 고려 말 우왕 6년(1380)에 황산에서 왜군을 무찌르고 돌아가던 중 본향인 전주에 들러 승전고를 울리며 자축한 곳이다. 오목대는 언덕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전주한옥마을을 한눈에 내려다보기 좋은 곳이다.
점심을 먹으러 현대옥으로 들어갔다.
전주비빔밥과 콩나물국밥을 시켰는데 아주 맛있다. 역시나 전주를 대표하는 음식이다.
콩나물국밥은 계란이 들어간 것과 안들어간 것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경기전은 1410년(태종 10)에 어용전이라는 이름으로 창건하고 태조의 영정을 봉안했는데 임진왜란 때 소진되었으나 영정은 묘향산 보현사에 옮기어 보존할 수 있었다. 현재의 건물은 1614년(광해군 6) 전라도관찰사 이경전이 다시 영정을 봉안하기 위해 중건한 것이다.
전동 성당은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유교식 조상 제사를 폐지하고 신주를 불태워 참수형을 받은 한국교회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가 순교한 자리에 세워졌다. 또한 ‘호남의 사도’로 불린 유항검 아우구스티노와 김유산 토마스, 유항검의 동생 유관검과 이우집, 윤지충의 아우 윤지헌이 순교한 곳이기도 하다.
이들의 순교 정신을 기리고자 1891년(고종 28)에 프랑스 보두네(Baudenet) 신부가 부지를 매입하고 1908년 성당 건립에 착수해 1914년에 완공했다.
회색과 적색의 이형 벽돌을 사용한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로서, 내부 열주는 8각 석주로 되어 있으며, 석주 사이는 반원의 아치로 연결되어 있다. 서울의 명동성당, 대구의 계산성당과 함께 대한민국의 3대 성당으로 손꼽힌다.
전주읍성의 4대문 중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남쪽문인 풍남문(보물 제30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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